서울시립교향악단의 부지휘자 성시연(37)씨는 "무난하고 평탄한 삶은 생명력을 잃은 인생"이라 믿는다. 그래서 20대 중반의 나이에 4세 때 시작한 피아노 연주 대신 지휘자의 길로 진로를 틀었다. 스스로 "불나방처럼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고 할 만큼 과감한 선택이었다. 독일 베를린 자택에서는 세계 각지의 빡빡한 연주회 일정 때문에 집안에 여행 트렁크를 펼쳐 놓고 생활하는 "트렁크 인생"을 살고 있다. 1분기만도 벌써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공연을 마친 그는 베를린에 머무는 기간이 연간 3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 그에게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을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 '마스터피스 시리즈 Ⅱ'는 또 한 번의 기분 좋은 고통을 수반하는 일정이 될 것 같다.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정체기를 극복하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해 2007년 지휘자로 첫 데뷔할 때 연주했던 슈만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고 말했다.
"첫 지휘 스승이신 롤프 로이터 선생님이 암으로 돌아가신 직후 고통을 추스르며 그 분께 바친다는 마음으로 연주했던 곡이에요. 그 이후로 한 번도 지휘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내 벽을 뛰어넘어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꺼내 들었어요. 슈만으로서도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작곡한 곡이기도 하죠."
이번 연주회는 그가 선호하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협연자와 함께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연주회 1부는 손열음이 협연하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꾸민다. 2011년 두 사람은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한 무대에 서 호평을 얻었다. 그는 "협연은 100% 협연자의 음악적 해석을 존중하는 편"이라며 "특히 자기 주장이 뚜렷한 연주자랑 함께 할 때 흥미롭고 좋은 연주를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이번 서울 연주 일정은 평소 귀국 시보다 길게 잡혀 있다.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외에도 4월 3일에는 서울시향을 이끌고 2013 교향악축제에 참가해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4월 28일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주역 가수로 활동 중인 캐슬린 김의 첫 내한 리사이틀 지휘를 맡았다. 김씨는 성씨의 서울예고 동문이다. "오페라 지휘의 막연한 꿈은 있지만 가수를 무한한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아직 안 돼 있어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는 "일단 교감할 수 있는 가수와 함께 만드는 이번 공연으로 구심점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보스턴 심포니 부지휘자를 지낸 성씨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음악가 경력을 추가하는 것보다 진솔한 삶을 일궈 나가는 일에 요즘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음악도 삶에서 나오는 것인데 인생을 모르면 공허한 음악만 울릴 수밖에 없잖아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최대의 목표는 남자친구 만들기인데 잘 되겠죠?"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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