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는 영원한 절규의 작가 이상(1910~1937)으로부터 비상(飛翔)의 꿈을 영원히 앗아간 건 결핵이었다. 결핵으로 희생된 천재는 그 뿐만 아니다. 철학자 데카르트와 칸트, 스피노자는 물론이고, 쇼팽과 도스토예프스키도 결핵으로 숨졌다. 결핵의 역사는 발병의 흔적이 기원전 7,000년 경의 신석기 인류 화석에도 있을 정도로 장구하다. 하지만 당대의 천재들을 포함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질병의 제왕'으로 등극한 건 산업혁명 이후다.
■ 인류가 결핵과의 오랜 싸움에서 가까스로 승기(勝機)를 잡은 건 1943년 스트렙토마이신이 발견되고부터다. 그 전까진 치료라고 해야 환자를 염소우리에서 재우거나, 나귀 젖을 먹이는 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가장 널리 쓰인 치료제가 게 껍데기 분말이었다고 하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스트렙토마이신 발견 이래 치료법의 눈부신 발전과 각국의 적극적 대처, 영양상태의 개선으로 1980년대부턴 세계적으로 발병이 급감해 완전 퇴치가 기대되기도 했다.
■ 그러나 90년대 이후 사회적 경각심이 이완되면서 '결핵의 역습(逆襲)'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결핵 발병 및 사망률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에 오를 정도로 '결핵 후진국'으로 전락한 상태다. 결핵의 재확산에서 특기할 만한 상황은 결핵균에 내성이 생겨 어떤 치료제의 약발도 듣지 않는 광범위내성결핵(SDR), 즉 슈퍼결핵의 증가세다. 현재 약 12만 명에 달하는 국내 결핵 환자 중에서 슈퍼결핵 환자는 140명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 국립마산병원은 정부가 운영하는 대표적 결핵 치료ㆍ요양기관이다. 일제강점기 이래 서정주 김춘수 구상 등 숱한 문인들이 거쳐가며 한때 '결핵문학의 산실'로도 불렸다. 최근 본사가 창원인 현대위아 직원들이 결핵의 날을 맞아 슈퍼결핵을 포함한 마산병원 결핵환자 치료지원금으로 1억5,000여 만원을 기탁했다고 한다. 월급의 1%를 떼 조성한 '나눔기금'을 쓴 건데, '결핵의 역습'이 기업의 나눔활동까지 일으킬 상황이 됐다는 현실이 새삼스럽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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