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키프로스와 트로이카(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ㆍ국제통화기금)가 잠정합의한 구제금융안을 승인했다. 이로써 키프로스는 이르면 5월 초 트로이카로부터 100억유로(약 14조4,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아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됐다.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작한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는 다음날 새벽까지 10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디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협상이 결렬될 경우 사퇴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친 끝에 금융 부문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한 100억유로의 구제금융안 합의를 이끌어냈다.
합의안에 따르면 키프로스 2위 은행으로 부실채권 규모가 가장 큰 라이키 은행은 주식과 채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예금을 청산하고 즉각 은행을 폐쇄한다. 라이키 은행에 예치된 10만유로(약 1억4,400만원) 이상의 고액 예금은 청산에 따른 손실률이 최대 4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만유로 미만의 예금은 모두 보호된다.
라이키 은행의 우량자산과 부실채권을 따로 분리해 관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우량자산은 키프로스 최대 은행인 키프로스 은행으로 이전된다. 라이키 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제공받았던 긴급유동성지원(ELA) 90억유로도 키프로스 은행이 받게 된다. 키프로스 은행은 9%의 자기자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10만유로 이상인 비보호 예금자 등을 출자 전환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재편된다.
키프로스 중앙은행은 이날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를 우려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키프로스 은행과 라이키 은행에서 찾을 수 있는 현금을 하루 100유로로 제한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강도 높은 금융 구조조정과 긴축으로 키프로스 경제가 회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은행들이 26일 영업을 재개하지만 뱅크런 사태의 우려는 여전하다.
키프로스 정부가 금융소득세와 법인세 등 세금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외국 기업들의 철수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다국적 기업들이 세율이 낮고 금융시장이 안정돼 있다는 이유로 키프로스를 선호했지만 이번 사태로 불안정성이 노출돼 키프로스를 떠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키프로스에 예치돼 있는 100억~300억유로 상당의 러시아 자금이 고액 예금자 과세로 손실이 커지면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리 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은 “당분간 키프로스와 키프로스 국민은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