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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전 음악에 펑크 옷 걸치고… 오페라와 런웨이의 기발한 만남 260년 전 작품이 첨단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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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전 음악에 펑크 옷 걸치고… 오페라와 런웨이의 기발한 만남 260년 전 작품이 첨단 변신

입력
2013.03.2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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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이 오페라 '세멜레'를 발표한 것은 1744년이다. 그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오페라 주인공이 펑크 패션으로 모델들과 함께 런웨이를 걷게 될 줄은. 그 시대 악기인 테오르보가 일렉트릭 기타로 변신할 줄이야.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작으로 22, 23일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선보인 '세멜레 워크(Semele Walk)'는 2010년 하노버의 헤렌하우젠 공연예술제에서 세계 초연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오페라와 패션쇼를 결합한 이 별난 음악극의 의상은 전위적인 펑크 패션의 대명사,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맡았다. 화려하고 대담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걸친 채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 틈에서 성악가가 노래하고 연기한다. 펑키 헤어 스타일에 얼굴을 하얗게 칠한 그들의 분장이 우아하면서도 괴이하다.

바로크 오페라의 현대적 변용인 이 작품은 헨델의 원곡을 쓰지만, 형식과 주제는 다르다. 2시간 반인 원작을 80분 길이로 줄이고 본래 10명인 등장인물을 단 2명으로 압축하면서 초점도 바뀌었다. 원작은 신이 되고 싶은 여자 세멜레, 그녀의 연인인 신들의 왕 주피터, 세멜레를 질투하는 주피터의 아내 주노의 삼각 드라마가 중심이지만, 연출가 루드게르 엥겔스는 세멜레(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자모즈카)와 주피터(카운터테너 아르민 그라머)만 선택해 세멜레의 욕망을 부각시켰다.

위엄 있는 서곡으로 극이 시작되면, 펑크 패션의 연주자들이 악기를 들고 런웨이를 걸어나와 제자리로 가서 앉는다. 이어 모델들의 캣워크 행렬에 끼어 세멜레가 등장한다. 그녀는 노래하면서 달리고 뒹굴고 고함을 지른다. 불타는 듯 강렬한 오렌지색으로 솟구친 세멜레의 헤어스타일은 파멸을 알면서도 불멸을 갈망하다가 한 줌 재가 되어버리는 그녀의 운명을 닮았다.

음악 사용법도 독특하다. 어쿠스틱 악기에 앰프를 달아 신경을 건드리는 미세한 소음과 록밴드를 방불케 하는 굉음을 군데군데 사용한다. 베를린에서 온 칼레이도스코프 앙상블이 올로프 보만의 지휘로 연주하는 것은 분명 바로크음악이지만, 펑크 스타일과 동시대 현대음악을 어색하지 않게 융합하고 있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작품이다. 자주 공연되지 않는 260여 년 전 오페라가 오늘의 최전선, 미래가 되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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