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67)가 24일 망명지인 영국 런던에서 사망했다. 외신은 그가 전날 런던 템스 밸리의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최대의 올리가르히(신흥재벌)였던 베레조프스키는 2000년 처음 집권한 푸틴 대통령의 올리가르히 척결 과정에서 쫓겨나 2001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베레조프스키는 러시아와 스위스 검찰로부터 사기, 횡령, 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돼 국제 수배 대상에도 올라 있다.
BBC방송은 영국 경찰이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화학ㆍ생물ㆍ방사능ㆍ핵(CBRN) 전문가들을 베레조프스키의 자택으로 급파,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튜어트 그린필드 템스 밸리 경찰서장은 “사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완전하고 철저한 조사가 되도록 자택 인근을 폐쇄했으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경찰이 베레조프스키의 죽음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2006년 런던에서 방사능 물질 폴로늄-210에 중독돼 사망한 사건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보고 CBRN 조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베레조프스키의 친구였던 리트비넨코는 1998년 당시 푸틴이 수장으로 있던 FSB의 반정부 인사 암살 음모를 폭로한 후 2000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해 반푸틴 활동을 해왔다. 베레조프스키 역시 런던 망명 후 푸틴을 신랄하게 비판해 크렘린의 표적이 돼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베레조프스키가 최근 심리적 불안 상태에 있었던 만큼 자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사망 전날(22일) 일야 제굴레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다”며 “러시아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큰 소원은 없다”고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베레조프스키의 변호사였던 알렉산드르 도브로빈스키도 “자살했다는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공보실장은 “베레조프스키가 몇 달 전 푸틴 대통령에게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귀국을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소개했다.
BBC는 베레조프스키가 지난해 영국 프로축구팀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벌인 55억달러(6조원) 규모의 소송에서 진 뒤 정신적 타격과 함께 수천만 달러의 변호인 비용 부담으로 고민해왔다고 전했다. 아브라모비치는 푸틴 정권과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레조프스키는 1990년대 중반 러시아의 국유재산 민영화 과정에서 정경유착 등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올리가르히의 원조로 항공ㆍ자원 관련 기업과 방송사, 신문사 등 언론까지 소유하며 막후실세로 권력을 행사했다. 둘째 딸 타티야나를 통해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던 그는 “내가 원하면 원숭이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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