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양이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된 이후 30년 간 고양이에 천착해온 시인 황인숙(55)씨가 이번에는 고양이 '란아' '보꼬' '명랑이'와 이태원 해방촌 옥탑방에서 6년간 동거하며 살아온 나날들을 기록한 에세이를 선보였다.
앞서 수필집'해방촌 고양이'(2010)와 장편 소설 '도둑괭이 공주'(2011)를 펴내기도 한 그는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고양이에 대해 무한한 경외와 애정을 드러낸다. 고양이가 앞발을 기분이 좋을 때 하는 동작인 '꾹꾹이'를 보며 감격하고 길고양이가 꽁치 깡통에 얼굴이 끼인 채 달아나는 사진을 본 뒤에는 길 가다가도 생선 깡통만 보면 발로 찌그려 뜨려야 안심이 될 정도다.
뿐만 아니라 한 시인의 영혼을 사로잡은 생명체에 대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헌가'도 잊지 않는다.'고양이! 알면 알수록 고양이라는 존재는 황홀한 피조물이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감정 섬세하고 자존심 강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심 많고, 몸가짐은 우아하고 표정은 풍부하다. (중략) 이런 멋진 피조물들과 함께 뒹굴고 안을 수도 있고 쓰다듬을 수도 있다니 내 인생의 드문 행운이며 지복이다. 고양이를 대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셋은 물론 동네를 떠도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캣맘'으로 살고 있는 그가 감당해야 하는 나날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수입의 대부분을 고양이 먹이를 장만하는데 써야 하는 건 물론 집안 이곳 저곳에 배설물을 통해 자취를 남기고 때론 옷가지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아프면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남루한 일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약을 먹이고 손톱을 깎아주고 먹이를 주는 것까지 어느 하나 쉬운 일도 없다.
하지만 정작 감당하기 힘든 건 집을 잃고 떠도는 길고양이를 향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다. "그렇게 할 일이 없냐"는 지청구를 귀에 달고 살고 길고양이들에 밥을 주다가 동네 부녀회장에게 매몰찬 경고를 받지만 차 밑에서, 골목 어귀에서 굶주리고 있을 새끼 고양이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그에게서 세상에 버려진 것들의 쓸쓸함을 껴안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읽힌다. 어쩌면 고양이야 말로 슬픔으로 시인을 깨우는 존재인지 모르겠다.
김대성기자 loveli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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