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엘리베이터 속 시선 피하기는 영장류 조상의 '유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엘리베이터 속 시선 피하기는 영장류 조상의 '유산'

입력
2013.03.22 11:51
0 0

원숭이무리 보면 인간사회 보여… 지배·복종이 사회관계 본질요소족벌주의·혼인·피아 구분 등 영장류와 인간 흥미로운 비교

1층에서 빈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고 올라가는 사람은 십중팔구 "중간에 아무도 타지 않기를" 하고 은근히 바라게 된다. 왜일까. 낯선 자와 제한된 공간에 함께 있는 일이 서먹해서? 혹시라도 상대가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런 불편한 심리를 설명해주는 동물실험이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진화생물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인 마에스트리피에리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25쌍의 붉은털원숭이를 비좁은 우리 안에 한 쌍씩 넣고 한 시간 동안 행동을 관찰했다. 원숭이의 절반은 과거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안면을 튼 관계였고 나머지는 전혀 처음 보는 사이였다. 서로 아는 원숭이들은 잠시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그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교대로 서로를 마사지하고 기생충을 잡아주며 돌보기 시작했다.

본 적이 없는 원숭이들끼리는 긴장이 팽팽히 유지됐고, 어떤 원숭이는 심리적인 압박을 견디다 못해 자신의 몸을 마구 할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이들도 서로의 몸을 돌봐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알던 원숭이에 대해서 보이는 것만큼 상호적이지는 않다. 대신 서열이 정해져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으로 보살피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엘리베이터 속의 긴장은 이 같은 영장류의 관계설정 초기단계쯤에 해당하는 것이다.

은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는지, 왜 그런 관계를 맺는지를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친척인 영장류와 비교해가며 설명한 책이다.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은 오늘날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정신적 능력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장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심리적이고 행동적인 소질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아주 오래된 정서적, 인지적, 행동적 알고리즘이라는 '자동조종장치'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우리는 어렵고 위험천만하지만 늘 흥미진진한 인간사를 헤쳐나간다고 주장한다.

다시 붉은털원숭이로 돌아가면, 그들의 관계맺기 방식을 설명하는 가장 완벽한 이론은 '죄수의 딜레마'다. 우리에 함께 갇힌 원숭이들의 절반 정도는 뚜렷이 비대칭적인 권력관계가 관찰되고 이런 상황에서 위협을 느낀 원숭이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상대의 몸을 손질해주는 협력 전략을 선택한다. 비대칭적인 권력관계가 관찰되지 않는 원숭이들은 상대의 배신에 앙갚음하거나 상대방 손질해주기를 조금씩 서로 교환하는 맞대응 전략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때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인간 관계는 물론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하지만 '이해의 갈등'이라는 핵심적인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싸움'이나 '협상'보다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훨씬 효율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그래서 지배와 복종이야말로 인간을 비롯해 사회성을 지닌 모든 영장류의 사회적 관계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책에서는 이뿐 아니라 인간의 족벌주의, 출세를 위한 전략, 익명일 경우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행동의 차이, 남녀가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양태 등을 영장류의 경우와 비교해 가며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인간사회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는 저자의 논리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책을 덮고 나면 뭔가 개운하지 않다. 그래도 인간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저자도 그걸 느꼈던가 보다. '사람들의 평균적인 행동은 과학적으로 예측될 수 있지만 이 평균을 넘어서거나 또는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예측 불가능한 여러 변형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인간 본성의 매력'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지배와 복종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기 단계의 행동들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드레스드 투 킬'에서처럼 살인이라는 극한상황이 발생할 수도, 2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이 3층부터 22층까지 모든 단추를 누른 뒤 씽긋 웃으며 3층에서 내려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할 수도 있는 법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