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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도덕주의 → 소극적 자유주의 → 협의·전향적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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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도덕주의 → 소극적 자유주의 → 협의·전향적 잣대

입력
2013.03.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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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음란의 문제가 법적 논란으로 본격 비화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다. 그 전에도 정비석씨의 소설 (1954년) 등 일부 예술작품이 외설 논란에 휘말렸지만, 형사법 제재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형사정책연구원 박미숙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1970년 이른바 '성냥갑 사건'은 대법원이 음란의 개념을 정의하고 음란성 판단 기준을 제시한 최초 판례다. 부산의 한 성냥 제조사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 '나체의 마야'를 성냥갑에 새겼는데, 대법원은 "명화집에 실린 그림이라도 판매 목적으로 복사 제조했다면 명화(名畵)를 음화(淫畵)로 만든 것"이라며 유죄 판결했다. 음란성과 관련한 대법원의 보수적 판단은 1990년대까지 꾸준히 이어져, 1990년 대법원은 공연윤리위원회 심의까지 마친 영화 '사방지'의 포스터를 음화로 판단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대법원 판단 기준에 미약하나마 자유주의적 요소가 더해졌다. 1995년 대법원은 음란문서 제작 혐의로 기소된 의 저자 마광수씨 사건에서 "작품의 예술성에 따라 성적 자극이 완화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렇지만 마씨의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2000년 소설가 장정일씨의 작품 의 경우에도 "예술적 가치에 따라 음란성이 완화되어 형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판단했지만, 장씨에게 유죄 선고를 했다.

기존의 엄격한 도덕주의에 소극적 자유주의가 가미됐던 대법원의 입장이 전향적으로 변화한 것은 2008년부터다. 그 해 대법원은 음란 동영상 유포 혐의로 기소된 동영상 제작자 사건에서 "형사법이 도덕ㆍ윤리 문제에 함부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는 성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음란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는 '성적 수치심'이나 '성적 도의 관념' 등 다소 자의적이었던 기존 음란성 판단 기준보다 훨씬 더 음란의 범위를 좁힌 잣대로 해석된다.

성인용품(자위기구) 관련 판례로 국한할 경우, 대법원은 물건이 남성용이냐 여성용이냐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2000년 대법원은 남성 성기를 묘사한 여성용 자위기구와 돌출형 콘돔을 "정상적 성적 수치심을 해치거나 선량한 성적 관념을 해치지 않는다"며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성용 자위기구 수입 통관을 불허한 세관의 결정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2009년 통관을 허용하라며 수입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2003년 여성 성기를 세밀하게 재현한 남성용 자위기구에 대해서는 "사회 통념상 그것을 보는 것 만으로도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시킬 수 있다"며 형법상 음란물로 판단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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