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권 탄압 대명사'에 공식 사망 선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권 탄압 대명사'에 공식 사망 선고

입력
2013.03.21 12:19
0 0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퇴임을 하루 앞둔 송두환 헌재 소장 권한 대행이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 제2호,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제9호)는 모두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문을 낭독하자 방청석에서는 일제히 박수가 쏟아졌다. 1974년 대통령긴급조치가 발동된 지 39년 만에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첫 위헌 결정이었다.

헌재의 이날 결정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청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헌재가 "긴급조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내용으로 남용되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개헌이 이뤄졌다"고 함으로써, 기본권 탄압의 대표적인 수단이었던 긴급조치를 위헌이라고 명백히 선언한 것이다. 헌재가 긴급조치에 대한 공식적인 '사망 선고'를 내린 셈이다.

이날 결정으로 과거 긴급조치 위반으로 사법 처벌을 받았던 피해자들은 명예훼손과 권리 구제의 기회를 갖게 됐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긴급조치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피해자는 585건의 재판을 통해 1,140여명이다. 이들 대부분(282건∙48%)은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던 중 또는 수업 도중에 박정희 정권이나 유신체제를 비판해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법원에 재심 청구를 할 수 있으며, 무죄를 선고받는 절차를 밟게 된다. 대법원이 이미 지난 2010년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으로 판단하고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법원이 사건을 개별적으로 판단해 온 것에 비해 구제의 길이 한층 넓어진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법원 판결은 해당 사건에만 효력을 갖지만, 헌재 결정은 모든 긴급조치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통한 보상도 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2011년 3월 긴급조치 위반으로 3년을 복역했던 오종상씨에 대해 국가에 1억8,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긴급조치 피해자 보상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으로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보상 기준 등이 발 빠르게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는 이날 선고에서 '긴급조치의 위헌심사 권한이 헌재에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를 위헌이라고 하면서 불거진 양 기관의 갈등에 대해 "긴급조치는법률로, 당연히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헌재에서 심사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한편 이날 선고를 듣기 위해 헌재를 찾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긴급조치로 잡혀가 받았던 고통이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다"며 "오늘 선고가 있었지만 여전히 유신의 잔재가 남아 있는 등 과거 청산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백 소장과 함께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장준하 선생의 유족 역시 "사법부가 긴급조치 위헌 판결을 내려 3권 분립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반겼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