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처녀처럼 끝은 달아나는 토끼처럼"이라는 손자병법의 구절은 전쟁이든 무엇이든 시작의 중요성을 잘 알려주는 말이다. 처녀처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또는 호감을 사면서, 또는 약한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일을 시작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승기를 잡은 다음에는 달아나는 토끼처럼 신속하고 확실하게 마무리를 하라는 게 손자의 충고다.
새 정부의 출범 초기는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을 바탕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시기이다. 당선 후 첫 일정으로 현충원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도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다짐을 휘호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취임 한 달이 다가오는 시점에 살펴보면 시작이 산뜻하지 못하다. 국민들은 감동하고 싶어 하는데 감동할 거리가 없다. 감동을 선사해 함께 일어서게 만드는 대표적 계기는 취임사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심금을 울리는 명연설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라의 국정 책임은 대통령이 지고,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너무 평범하고 밋밋하다.
이런 연설문 작성 경험이 있는 전직 고위 관리는 겨우 서기관 수준에서 쓴 글 같다고 비판했다. 큰 안목의 비전에 주력하지 못해 잘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유산이 될 만한 명문이 생산될 기회는 이렇게 평범하게 흘러갔다. 박 대통령의 반대파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를 상징하는 '한강의 기적'이 네 번이나 나오는 반면 민주 통합 개혁 인권 등의 단어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비판까지 했다.
인사에서도 국민들이 감동할 거리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국무총리는 한 번에 임명하지 못했고 일부 장관이나 차관급 인사는 취임도 하기 전에 스스로 사퇴해야 했다. 몇몇 장관 후보자는 탈법ㆍ비리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고, 법무 차관은 엉뚱한 스캔들에 휩싸여 취임 일주일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사람을 골라도 어찌 그렇게 못 고르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이나 야당과의 소통도 실망스럽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구성원을 인선하고도 그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고, 정부조직법 개편 문제도 충분한 이해와 협조를 얻는 데 실패했다. 취임 이후 한 달이 가깝도록 정부가 완전한 출범을 하지 못한 상황을 야당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한 야당 인사는 대야관계에 대해 "MB가 하도 소통을 못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조금만 잘하면 시작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주눅든 패배자이며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동참할 명분을 주지 못하거나 자존심의 상처를 키우면 취임 5개월 이내의 대립관계가 5년 내내 계속된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었다. 다수결의 힘이 비상식적으로 부정되고 다수결에 대한 합의조차 어려운 국회에서 야당의 비협조와 대립은 국정 운영의 결정적 장애가 된다.
소통의 표본으로 꼽히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핵심 경제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취임 후 100일 동안 49차례에 걸쳐 연방 상ㆍ하원 의원 467명을 만났다고 한다. 그의 설득 사례는 의회와의 관계에서 실패하면 어떤 지도자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나치게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챙기고 토론보다 지시가 많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관료들이 고위직에 대거 발탁된 상황에서 '수첩공주'로 불려온 박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반드시 받아 적고 실천해야 할 금과옥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를 보면서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 뭘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하다. 취임 100일도 안 됐으니 좀 더 지켜보면서 개선해야 할 점을 환기시키는 게 좋겠다.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의 실패, 나라의 실패일 수 있으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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