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고 있고, 출판편집자로 일하면서도 나는 생각보다 책을 많이 사보지 않는 편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정말 읽고 싶은 책이 나왔을 때 지갑을 여는 것 말고는 대체로 책구입을 망설이는 편인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책을 사지 않아도 주변에 늘 읽을 책이 넘치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서가에는 참고도서들이 넘치고, 집에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과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신간들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쌓인다. 나의 경우 아내까지 작가여서 그쪽의 동료 문인들이 보내주는 책까지 합하면, 책은 언제나 문지방을 넘쳐나 흘러넘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책들은 다 읽지도 못한다. 그래서 나는 곰곰 생각해보게 되었다. 문인들이 서로 책을 증정하는 관행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책을 지금처럼 대량으로 찍지 못했던 시절에는 아마도 정말 중요한 지인이나 인사를 꼭 해야 하는 스승들에게나 책이 증정됐을 것이다. 얼마 전 100부 한정판으로 찍은 백석의 시집 의 초판본이 지방의 문학관에 기증됐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데, 책 안쪽에 육필로 永郞 兄 白石(영랑 형 백석)이라고 씌어 있다고 했다. 백석이 김영랑 시인에게 증정한 것이라는 것. 귀한 시집을 건네는 백석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대량 부수의 증정이 관행처럼 굳어진 지금 우리는 증정하는 이나 받는 사람이나 책이 귀한 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도언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