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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국·전복죽·주꾸미탕… 싱싱한 봄맛 밀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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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국·전복죽·주꾸미탕… 싱싱한 봄맛 밀물처럼

입력
2013.03.2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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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사절기를 숟가락 위에 올려놓고 살아온 게 조선땅의 핏줄인지라, 세상이 희뜩 뒤집어지고 강상의 도리가 열두 번 리뉴얼됐대도, 사람들 입맛만은 구한말의 어느 모퉁이에 머물러 있는 듯. 숲그늘 짙어지면 메밀묵 찾고, 바람 매워진다 싶으면 과메기 생각난다. 어쩌면 혀가 뼈보다 단단한가 보다. 여기저기 툭툭 봄꽃 몽우리 터지는 춘분, 예로부터 '이것 한 그릇은 목구멍에 떠넘겨야 봄'이라는 바닷것의 묵은 레시피를 들어보자. 특급호텔 주방장 대신 바닷가 토박이들의 목소리다. 싱거울 정도로 단순하지만 미각을 자극한다. 메뉴는 도다리쑥국, 전복죽, 주꾸미탕(샤브샤브).

"이기 한산도 쑥이데이. 곱제? 포실포실한 기 마, 마트에서 사는 기랑은 다르제? 쪼매 더 기다리라. 물이 팔팔팔 끓어야 한다카이. 도다리는 양파캉 파캉 무캉 다 끼린(끓인) 다음에 넣는 기라. 그래야 살이 안 깨지고 토롬토롬(토실토실)하게 무울(먹을) 수 있다카이. 맨 마지막에 넣는 기 이 토영(통영) 쑥 아이가."

-통영 서호시장에서 38년째 도다리쑥국 팔고 있는 '남옥식당' 공남옥(61)씨.

산란기 앞둔 싱싱한 도다리, 덜 녹은 땅을 뚫고 솟은 해풍쑥. 두 가지면 된다. 특별한 양념도 없고 복잡한 요리법도 없다. 운두 낮은 냄비에 물 끓이고 납작하게 썬 무 깔고 파, 양파, 땡초(청양고추) 넣는다. 채소가 물러지기 전 도다리, 쑥 넣고 한소끔 더 팔팔 끓이면 된다. 된장을 풀어도 되지만 맑게 소금간만 하는 게 낫다. 텁텁한 된장맛이 도다리의 식감과 쑥의 향기를 물크러지게 만들 수 있다.

조미료 넣으면 "절딴난다". 맛 내려다 맛 망쳐버리기 십상인 게 도다리쑥국이다. "느키해지면 쑥국맛 배리뿐다(버린다)"는 게 공씨의 말. 도다리 살 땐 뒤집어서 하얀 배 부분이 깨끗한 걸 고른다. 자잘한 붉은 점이 있는 놈은 잡은 지 오래된 놈이다. 알이 찬 암컷이 좋아 보이지만 이리(정액덩어리)가 있는 수컷 맛이 더 낫다는 게 중론이다. 크기는 어른 손바닥 만한 것으로 고를 것. 한 그릇에 한 놈 소복이 담겨야 제대로 된 도다리쑥국이다.

"초봄엔 살이 말라서 먹을 게 없다고? 모르고 해쌓는 소리제. 요새 전복이 진짜 전복이여. 이 전복이란 놈이 여름엔 다시마, 겨울엔 미역 먹고 자란당께. 언(어느) 놈이 더 맛날까? 모르면 한번 먹어봐. 이거 내장? 아따, 이 양반 클날 사람이네. 이걸 왜 버려? 내장을 넣어야 진짜 전복죽이랑께. 이거 빠지면 다 헛거여."

-완도 소문난 맛집 '아시나요'(완도 전복회덮밥 원조) 박정섭(63)씨.

복날, 투박한 것 대신 깔끔한 것을 먹고픈 사람들이 보양식 삼아 전복을 찾는 바람에 여름이 전복의 제철로 여겨진다. 하지만 전복은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 생식기만 제외하곤 사철 먹을 수 있다. 굳이 철을 따지자면 겨울과 봄 가운데 있는 요즘 전복이 실하다. 시장에서 파는 전복은 대부분 양식 전복이고, 종으로 따지면 참전복인데, 참전복의 생식기가 5~6월. 지금은 방란과 방정을 앞두고 한창 살이 올라 있다. 초봄의 전복이 쫄깃쫄깃한 까닭이다.

전복죽 만드는 법도 단순하다. 찹쌀을 물에 불려서 참기름 두른 냄비에다 다진 채소와 함께 볶는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먹기 좋게 자른 전복살과 내장을 함께 넣고 볶는데, 전복이 살아 있다면 내장은 먹기 직전 넣어준다. "참한 놈은 비린 맛도 안 난다"는 게 박씨의 설명. 전복 고를 땐 너무 큰 것보다 중간 크기가 좋다. 자연산 전복은 껍질에 붉은색 기운이 돈다. 양식 전복은 푸르스름하다.

"아이구, 이놈 손을 꽉 말아쥐는 것 좀 봐요. 힘이 얼마나 센지 손이 다 아프네. 여기(서천)는 중국산 없어요. 요기 보이죠? 금빛 테가 있는 요런 놈이 진짜 국산 쭈꾸미에요. 쭈꾸미맛? 무(無)맛이지. 사실 쭈꾸미 자체는 아무 맛이 없어요. 그래서 바다의 맛이 느껴지잖아요. 에이… 그런 게 말로 되나, 먹어 봐야 알지."

-서천 마량포(서해안 주꾸미 주산지) 마량어촌계수산물판매장 이성일(45)씨.

산란기를 앞둔 주꾸미도 이맘때 한창 토실토실하다. 한 입 가득 넣고 씹으면 구강에서 오독오독 음향효과가 제대로 난다. 날로 먹고, 삶아 먹고, 볶아 먹고, 무쳐 먹고 다들 맛있게들 먹는데, 요새 가장 인기 있는 요리법은 뭐니뭐니해도 샤브샤브다. "본래 무맛"인 주꾸미를 별 양념도 없이 살짝 데치기만 해서 먹는다. 그렇게 해야 제대로 난다는 오롯한 "봄바다의 맛". 말로 하자니 왠지 선문답 같은데, 역시나 먹어보면 그 맛을 알게 된다.

요리할 땐 되도록 육수를 연하게 내는 게 좋다. 멸치나 다시마를 살짝 담갔다 빼는 수준이면 적당하다. 양파와 청양고추로 칼칼한 맛을 더할 때도 마찬가지. 주꾸미를 고를 땐 대가리에 상처가 난 것을 피한다. 다리가 감겨 있는 것도 오래 못 산다. 대가리가 하얀 것보다는 거뭇거뭇한 게 더 싱싱하다. 크기가 너무 큰 것은 질기? 국산 주꾸미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흔히 통용되는 새끼손톱 만한 금빛 테두리는 대가리와 다리 사이에 있다.

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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