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를 이해한다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인류가 우리의 가족이나 사촌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돼요."
20일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10년이 되는 날. 이라크 전쟁 성공 여부에 대해선 논란이 여전하다. 이날을 기념해 방한한 세계적인 평화운동가 더글라스 러미스(77)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패했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미국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나라"라고 못박았다. 앞서 그는 19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이라크 국민에 사죄하라"는 내용의 평화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인으로서 참 슬픈 일이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미 감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나라를 더 사랑하기에 이러한 잘못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국제법의 핵심인 유엔헌장과 뉴른베르그 원칙의 기본을 깬 행위라고 지적했다. "미 정부가 주장했던 이라크 정부와 알카에다와의 연계,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는 모두 거짓이었어요. 유엔 조사단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증명했음에도 침략한 건 대량살상무기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당시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 안전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세우겠다고 했지만 이것마저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불안하고 부패한 정부를 세우게 만들었다"며 "우리는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미스씨는 이런 미국의 정책이 남북 관계를 긴장속으로 몰아넣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제가 북한의 관료라면 현재 상당히 두려울 겁니다.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이라는 최강의 군대가 언제 어떻게 쳐들어올지 모르니까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공포 때문이 아닐까요?"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이 했던 것처럼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북간의 긴장관계를 완화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북한에 포용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의미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려는 생각은 없을거라고 봐요. 두려움이 클 북한에겐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러미스씨는 가방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1930년대 만들어진 '최근 일본지도'라는 이름의 손바닥만한 책자였다. 지도에는 당시 일본의 영토로 한반도를 포함해 대만, 오키나와, 사할린 등이 붉게 표시돼 있다. 그는 오키나와를 가리키며 "2000년부터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며 "아름다운 곳은 분명하지만 한반도의 역사만큼이나 사연이 깊다"고 했다. 1880년대 일본이 영토확장을 하면서 대만에 이어 오키나와, 한반도 등을 상대로 차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하나의 독립국이었던 오키나와는 그래서 지금은 일본의 영토다. 오키나와에는 일본 주둔 미군의 75%가 상주 중이고, 동아시아지역 중 미 공군기지 최대규모인 카데나 기지도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오키나와는 피해지역이 될 게 분명해요. 북한이 공격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평화를 위한다면 세계인이 모두 내 가족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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