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욱
가천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우리는 서양문화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대부분 아침에 아파트에서 일어나 모닝커피를 들고 도로변을 따라 높이 뻗은 건물에 들어가 하루를 시작한다. 이처럼 일상의 많은 부분이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정체성이 퇴색되거나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공간 문화가 그렇다. 국내 전체 1,813만 가구 중 불과 0.5%인 10만 가구 정도만이 한국 전통 가옥으로 조성되어 있는 실정이다. 즉 점차 일상에서 우리의 고유한 정서를 느끼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야만 한국적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실내건축 분야의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공간은 우리의 삶을 담고 독특한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예를 들어 스위스에 가면 그 나라만의 정서와 문화를 도시 풍경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공간은 한 나라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하게 성장하는 도시 팽창에 대응하고자 효율성만을 강조하다보니 우리만의 특색은 잃어버린 채 천편일률적인 공간 문화가 조성됐다. 즉 우리 문화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법고창신’하는 공간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 드라마와 음악부터 시작되어 한국문화로 한류 열풍이 확대되면서 이제는 대중적 콘텐츠를 넘어 우리만의 전통문화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싶어 방문한 그들이 머무는 대부분의 공간들이 그들의 나라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시기를 기회삼아 해야 할 일은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를 담고 있는 한국적 스타일의 공간을 개발하고 확산시켜 우리 각자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국가적으로는 단순한 미적 가치 이상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국가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통문화를 잘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몇 가지의 대표 분야의 육성도 중요하지만 각 분야의 정체성이 공간으로 확장될 때 보다 완결된 브랜드의 정체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식’에서 한식 개별의 음식의 특성도 중요하지만 그 장소의 공간 디자인이 한식 브랜드의 격을 높일 수 있다. 다시말해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알리는 길은 단순히 맛을 보게 하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한국적 스타일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한국적 스타일 공간과 콘텐츠 부족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문화가 재해석된 우수공간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여 ‘한국적 스타일 개발 및 확산 사업’을 시행하기도 했다.
한국적 공간의 정의와 특징 그리고 이를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고, 이를 통해 한국을 방문하는 국빈들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총리실 접견실과 자라나는 학생들이 우리만의 문화적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학교를 시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또한 한국적 공간을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한국적 우수공간 공모도 진행했다.
이처럼 한류 문화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고 있는 한국적 공간 문화를 체계적으로 개발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시도가 단발적으로 그치게 된다면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발돋움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만의 고유한 전통을 기반으로 문화 융성의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도록 관련부처가 협업하여 한국적 공간 문화 조성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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