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시작은 마치 한 편의 연극 같다. 서곡이나 전주곡, 또는 극의 화려한 시작을 알리는 장중한 합창 한 곡 없이 막이 오르고 성악가들은 곧바로 능청스런 연기를 펼친다. '현재까지 공연되는 베르디의 유일한 희극 오페라'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주인공 팔스타프는 불룩 나온 배를 만지작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심드렁하게 앉아 있다. 그의 추종자들인 바르돌포와 피스톨라, 갑자기 들이닥친 카유스 박사와 함께 옥신각신 속도감 있게 주고 받는 대화풍의 노래는 연극 대사처럼 들린다. 오페라 무대로는 흔치 않은 성악가들의 유들유들한 연기가 색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국립오페라단이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팔스타프'를 21일부터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립오페라단은 개막을 이틀 앞둔 19일 '팔스타프'의 드레스 리허설을 언론에 공개했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등 주로 비극적 소재를 오페라로 작곡했던 베르디에게 성공적인 희극 오페라 작곡은 평생의 숙원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셰익스피어의 와 을 절묘하게 섞은 작가 보이토의 대본으로 생애 마지막 오페라인 '팔스타프'를 1893년 발표해 호평을 얻었다. 늙고 뚱뚱한 기사 팔스타프가 돈을 노리고 호기롭게 두 명의 유부녀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다가 얼간이 취급을 받게 되는 내용이다. 오스트리아 연출가 헬무트 로너는 이야기의 배경을 원작의 16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 윈저 근처의 작은 마을로 옮겨 왔다. 따라서 무대와 의상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강조했다.
희극 오페라라고 해서 객석이 떠들썩할 정도의 코미디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합창곡의 "세상사 모든 것은 희극과 같다"는 가사로 보여주듯 한바탕 소동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간간이 슬랩스틱 연기가 웃음을 자아내지만 타이밍이 중요한 코미디 특성상 자막에 의존하다 보니 웃음의 포인트를 놓치는 경우가 잦았다.
팔스타프 역의 바리톤 앤서니 마이클스 무어를 비롯한 출연진의 기량은 음악적으로나 연기면에서 고른 편이었지만 군중신은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중심축인 난네타(서활란)ㆍ펜톤(정호윤) 커플의 존재감이 부각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