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해 전 낙산사가 불에 타 무너져 내릴 때, 절이 소신공양(燒身供養)한다고 생각했다. 저 절이 제 몸을 불살라 천삼백 년 묵은 의상 대사(625~702ㆍ낙산사 창건주)의 업을 태우는구나. 성주괴공(成住壞空ㆍ나서 존재하다 소멸돼 원점으로 돌아감)이로구나. 이건 겁 없는 망념일 텐데, TV로 생중계된 그 화염을 보면서 나는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 같다. 연(緣)이 저물어 무(無)로 가는 길, 그 모습엔 엉버텨 억지로 존재하려는 것들이 넘보지 못할 수승함이 있다. 옛 절터, 마멸돼가는 시간의 풍경이 눈부신 그 폐허가 오늘 여행의 목적지다.
면석이 떨어져나가 너구리집이 된 석탑 부스러기와 얼굴이 문드러져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늙은 불상, 이젠 금당의 발굽이었는지 지대방의 아랫도리였는지 짐작할 방법도 없는 주춧돌. 그런 것들이 잡풀 속에 묻혀 나뒹굴며 비바람에 쓸리는 풍경을 폐사지(廢寺址)라 부른다. 문화재로 등록돼 보호 받는 곳도 있다. 그러나 거개는 산비탈에서 쓸려 내려온 돌무지나 다름 없는 대접을 받는다. 이 땅의 폐사지는 약 3,000곳, 그 중에 지도에 이름이나마 새겨진 곳은 100여곳에 불과하다.
여행자들이 옛 절터를 목적지로 삼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 일이다. 경주의 유명한 절터들과 옛 백제 땅의 절터 몇 곳, 최근엔 남한강변 드라이브 코스 따라 여주, 원주, 충주를 잇는 절터 기행이 인기다. 그곳엔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이야기가 서리서리 타래져 있고, 근사한 문화재가 있고, 경치도 괜찮다. 지도를 펴고 더 먼 곳을 더듬었다. 혹 ‘폐사’의 닫힌 어감에 어울리는 등고선이 있지 않을까. 합천, 산청, 거창, 함양. 경남 내륙 깊숙한 곳에 박힌 절터들은 1대 3만5,000 축척의 상세지도에도 자국이 희미했다.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쓸쓸하고 쓸쓸했다. 가람의 터를 대부분 논밭으로 내주고 몇 덩이 돌조각으로 남은 옛 절들이 적막으로 봄을 맞고 있었다. 옛 기록의 두터운 찬문(撰文) 속 영화가 어떤 것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깨지고 불타고 쓰러질 때의 처참함 역시 알 길 없다. 옛 절터는 고요히 자재했다. 풀밭엔 봄까치꽃이 보랏빛 먼지처럼 자욱했다. 책에 있는 명칭으론 찾아가기 힘든 곳도 있었는데, 왜란이나 호란, 멀리 몽골의 침입 때 사라진 절의 이름은 아득히 멀었다. 아미타불이거나 비로자나불이거나 밭의 주민에게 물으면 한결같이 “아, 미륵부처님” 하고 산비탈을 가리켰다.
합천 대동사지로 갔다. 대양면 백양리 마을 입구에서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으니 “공부하는 분입갑네. 대동사터를 우째 알고 찾아 왔능교?” 하고 되물었다. 보물 한 점(제381호ㆍ백암리 석등)에 지방문화재 한 점(경남 유형문화재 제42호ㆍ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단출하다. 그렇게 나란히 서 있는 것 빼곤 그냥 들이다. 논은 아직 갈아엎기 전이었다.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이 석불의 이마를 덮고 있었는데, 석불은 문화재라기보다 그저 마을 정자나무 앞에 놓인 세간 같았다. 천 년의 세월 동안 나무와 부처는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이끼 낀 부처의 얼굴엔 이목구비가 닳아 사라지고 없었다. 나무는 말이 없었다.
“여가(여기가) 저 해인사보다 오래됐다 카드라. 진짜라카이.”
사진 찍으라고 경운기를 치워준 노인이 말했다. 더 물으니 “글타 카기는(그렇다고 하기는) 카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들고 간 책을 뒤졌다. 이런 내력이 구전된다고 적혀 있었다. ‘절의 이름은 대동사, 혹은 백암사다. 이 마을에 종이 만들던 집이 많았고 지금도 몇 집 만든다. 전통 한지 유래담에 의령 국사봉 아래 대동사에서 처음 종이를 만들었다고 돼 있는데, 의령과 합천은 붙어 있으니 이 절터가 한반도에서 처음 종이를 만든 장소일 수 있다.’ 그러기에 지금 절터의 모습은 너무나 수더분하다. 그 사실이 노인의 말에 자신감이 없었던 까닭이겠지만, 그 소박함이 나는 말할 수 없이 기꺼웠다.
거창 가섭암지는 금원산 자연휴양림 안에 있다. 가섭암지는 폐허로 남은 다른 절터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다. 등산길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바위 사이 좁은 돌계단을 오르면 자그마한 동굴이 나타난다. 거기 어두운 안쪽으로 각도가 비틀린 바위에 마애삼존불(보물 제530호)이 몸을 숨기고 있다. 폐사지 유물이라기엔 불보살의 얼굴과 옷 매무새가 무척 매끈하다. 절집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 이 고운 부처들은 어쩌자고 아직 여기 숨어 있는 것일까. ‘참배 후 촛불을 끄고 가시오’라는 팻말 곁에 누군가 켜두고 간 초가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산청에 여린 흔적만 남은 폐사지 몇 곳을 거쳐 합천 영암사지(사적 제131호)로 갔다. 절터 사랑하는 이들이 전국 최고의 폐사지로 꼽는 곳이다. 황매산(1,108m)을 등 뒤에 펼쳐 두고 정동향으로 좌정한 모습이 청맹과니의 눈으로 봐도 압도적으로 당당해 보였다. 당우는 모두 사라지고 금당의 기단, 삼층석탑(보물 제480호), 쌍사자 석등(보물 제353호) 등이 남아 있다. 몇 ?계속된 발굴조사가 최근 끝났다. 아직 정리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접근을 제한하는 난간도, 유물이 보물임을 설명하는 안내판도 없다. 모르는 척, 석탑의 기단에 걸터앉아 버렸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시간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저녁이 되고 금당 터 앞 쌍사자 석등 꼭대기에 음력 초사흘의 달이 걸렸다. 이름을 모르는 산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황매산 철쭉 가지가 꽃대궁을 밀어내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쌀쌀했지만 춥지 않았다. 어둠이 깊어지고, 달은 더욱 또렷해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폐허의 경계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챙겨간 책 중엔 책장이 누렇게 바랜 시집도 있었다.
‘어찌 사라진 것이 이것뿐이랴/ 겨우 주춧돌 몇 개와 함께/ 나도 姉妹처럼 남겨져/ 풀 가운데 우거진 꿈이여/ 차라리 빈 절터에 절이 있다./……/ 눈을 뜨면/ 절터에서 절이 일어서서/ 대웅전으로 관음전으로/ 명부전으로/ 저녁이 밤이 된다/ 절모퉁이 어둠 속에서/ 어린 沙彌 나와서/ 며칠 전 새벽 꿈에서 본 손/ 바로 그 손으로 손을 모은다(후략)’(고은 ‘합장’)
합천ㆍ거창ㆍ산청=글ㆍ사진
참고 이지누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여행수첩]
●영암사지는 합천읍에 속해 있지만 산청에서 가는 쪽이 편하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단성IC에서 나와 황매산 군립공원 안내판을 따라가면 된다. 5월 12~25일 황매산철쭉제가 열린다. ●대동사지에 가려면 단성IC에서 고령 방향 20번 국도를 따라가 대양면 소재지에서 1011번 도로로 갈아타야 한다. 합천군 관광개발사업단 (055)930-4667 ●가섭암지는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금원산자연휴양림 안에 있다. 지곡IC에서 나와 37번 국도 타고 무주 방향으로 가면 된다. 금원산자연휴양림 (055)211-6782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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