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국내 最古 무궁화, 무관심으로 말라 죽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국내 最古 무궁화, 무관심으로 말라 죽었다

입력
2013.03.19 17:32
0 0

국내 최고령 토종 무궁화가 당국의 관리부실과 무관심 속에 얼어 죽은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예안향교 명륜당 앞에서 100년 정도 살아온 이 무궁화 한그루는 숱한 사연을 뒤로한 채 지난 2011년 겨울 추위에 고사했다. 일제강점기 때 유림에 의해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당시 한민족 말살정책에 따라 '피꽃'으로 불렸다. 무궁화의 붉은 단심을 낮춰 부른 말이었다. 무궁화는 벌레가 잘 생기고, 꽃가루가 눈병과 부스럼 등 전염병을 유발한다는 유언비어도 퍼트렸다. 일제는 그것도 모자라 전국의 무궁화를 뽑아내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예안 유림이 향교에 무궁화를 심은 것은 상징적 저항행위의 하나로 해석되고 있다. 우리 겨레가 무궁화를 민중의 꽃으로, 민족 단결과 광복 의지를 담은 정신적 표상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예안 유림은 일제치하 의병활동의 첨병이었다.

하지만 후손들은 향교에 무궁화를 심은 선현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무관심과 냉대 속에 무궁화의 일생은 수난으로 점철됐다. 일제의 눈총을 받으며 자라야 했던 나무는 1976년 안동댐 수몰로 향교가 이전할 때 함께 이식되면서 고향을 잃었다. 향교 주변 부락민들이 수몰로 뿔뿔이 흩어지자 나무의 존재도 잊히는 듯했다.

이 무궁화가 최고령으로 공식 인정받은 것은 1992년이다. 당시 임하댐으로 수몰 위기에 놓인 용계 은행나무의 상식을 위해 안동을 찾은 문화재관리국 간부와 문화재위원이 귀로에 예안향교를 들렀다 토종 무궁화를 발견했다. 순수 토종 무궁화이자 국내 최고령 나무라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그걸로 그만이었다. 문화재 당국과 경북도, 안동시는 별다른 보호대책을 수립하지도 않았다. 나무는 2004년에야 뒤늦게 보호수로 지정됐으나 보호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북도는 2010년 6월 수명이 다 했다는 이유로 무궁화 고사판정을 내리고 보호수 지정을 해제했다. 관리 책임이 있는 안동시는 현황파악조차 못했다. 마지막 숨을 붙들고 있던 나무는 영하 20도의 맹추위가 보름 이상 지속됐던 2011년 겨울 얼어 죽었다. 안동 문화재 관계자는 "90년대 초반 이 무궁화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자는 논의까지 있었으나 당국과 세인의 무관심 속에 쓸쓸히 최후를 맞았다"며 "나라꽃에 너무 무신경했다"고 꼬집었다.

이임태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