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MB의 뇌관

입력
2013.03.19 12:03
0 0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의 단초가 된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작품이다. 참여정부가 임명한 마지막 국세청장이었던 그는 정권이 바뀌자 재빨리 말을 갈아탔다. 이명박 정권 실세들과 접촉해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자리를 보전했다. 연임에 보답하고자 곧바로 참여정부에 대한 사정(司正)성 세무조사에 나섰다. 측근이 운영하던 골프장은 물론 심지어 노무현의 단골 음식점과 병원 등을 뒤졌다. 그러다 건진 게 노무현의 자금줄로 알려진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이다.

정권이 새로 들어서면 늘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에 고심한다.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사정이다. 단서를 찾기도 어렵지 않다. 임기 말 쏟아진 비리 정보가 사정기관에 축적돼 있다. 한상률처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갖다 바치는 충성파들이 널려있다. 직접 나서기 쭈뼛한 터에 누군가 비리를 단죄해 달라고 나서면 금상첨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꼭 이런 꼴이다. 참여연대와 YTN노조가 내곡동 사저 비리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해달라며 이 전 대통령을 고발했다. 두 사건 모두 이 전 대통령이 '몸통'이라는 의혹을 받았으나 흐지부지 됐던 것들이다.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은 단순히 예산 낭비의 문제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과거 이 전 대통령에게 쏠렸던 여러 의혹의 실체까지 밝혀질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튀어나왔다. 특검팀이 아들 이시형씨가 사저터 구입비용으로 큰아버지 이상은 ㈜다스 회장에게서 빌렸다고 주장한 6억 원을 수사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시형씨가 살던 아파트 전세자금 6억4,000만원 대부분이 청와대에서 나온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 직원 6명이 거액의 현금을 들고 은행을 찾아가 수표로 바꿔 건네줬다. 이 가운데 1억4,000만원은 1만 원짜리 구권 화폐였다. 2007년 1월 이후 발행이 중단된 지폐가 5년 만에 등장했다. 따로 쌓아뒀던 검은 돈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시형씨가 큰아버지에게 6억 원을 빌렸다는 당일 행적도 맞지 않았다. 차용증 원본은 있지도 않다. 총 12억4,000만원의 출처가 미궁에 빠진 것이다. 어디서 나온 돈일까.

여기서 한 동안 잊혀졌던 도곡동 땅과 ㈜다스가 떠오른다. 2007년 대선 때 이 전 대통령의 실소유주 논란이 제기됐던 것들이다. 1995년 포스코개발에 매각된 도곡동 땅은 이상은씨 소유라는 게 검찰 결론이지만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은 "포스코개발 세무조사 때 '도곡동 땅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고 적힌 문건을 봤다"고 주장했다. 또한 2008년 BBK사건 특검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에서 1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야무야 됐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 이 전 대통령이 몸통이라는 증거는 수두룩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 거취 관련 VIP 보고 결과' 문건 등에서 불법사찰 내용을 수시로 보고받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검찰은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친 수사에서 실무진만 구속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직적 개입 혐의나 이 전 대통령의 개입 의혹은 봐주기로 일관했다.

두 사건은 이미 수사도 상당히 돼있다. 정권의 의지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도 봐줄 이유가 없다. 그 자신의 강점인 원칙과 도덕성을 보여주기에 이만한 호재가 없다. 검찰로서도 덮었던 사건을 다시 파헤치기가 껄끄럽기는 하겠지만 크게 보면 득이다.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단절은 불가피하다. 전직 대통령이 형사 소추의 대상이 되는 건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오만한 권력의 위법행위는 퇴임 후라도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법 위에 군림하려는 대통령이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