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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책 읽으면서 아이들이 달라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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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책 읽으면서 아이들이 달라졌죠"

입력
2013.03.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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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가 바뀐 독서운동이 판 칩니다. 권장 목록을 죽 늘어놓고 자 읽어라 해요. 그리곤 교사가 간섭하죠. 얼마 안 가 아이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하고,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백화현(54) 서울 국사봉중 교사는 10년 째 자발적인 책 모임 운동을 펼치고 있다. 4~6명의 소규모 독서 모임을 권장해 원하는 책을 찾아 읽고 친구들과 대화 하며 스스로 배우는 방식에 ‘도란도란 책 모임’이란 이름도 붙였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들 둘과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라는 책을 최근 냈다. 등 공동저작까지 다섯 번째 책이다. 백 교사는 1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저 몇몇이 모여 책을 읽고 친구들과 공유하는 이 쉬운 운동을 거대한 독서 운동으로 키우고 싶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시작은 2003년 당시 중2였던 큰 아들 때문이었다.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자 열등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고 친구들을 모아 일요일마다 가정독서모임을 몇 년 간 운영했다. 그렇게 2년쯤 지나자 아이의 표정도 편해지고 저절로 학습능력도 올라갔다. 지적인 토대가 쌓이고 스스로 추론하는 힘이 생긴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자존감이 생기고 동시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졌다는 게 가장 큰 성과였다. 서울대생인 작은 아들은 엄마 책이 잘 팔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우리 아들 서울대에 보냈다’는 부제라도 달아야 하지 않냐고 슬쩍 농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대학 보내기’나 ‘논술 잘 하는 법’ 같은 학습 지도서를 쓸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 학교가 분명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한 그는 “교사들이 ‘한국에서는 20세기의 교사가 19세기의 교실에서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오지선다의 정답만을 찾는 게 아닌 어느 순간 질문이 툭 튀어나올 수 있는 창의성을 교실에 심어주겠다는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해까지 근무한 서울 봉원중에서 그 노력으로 학생 모임 39개, 학부모 3개, 교사 1개 등 무려 43개의 책 모임이 꾸려졌다. 축구만 하고 책을 전혀 안 보는 학생들은 와서 축구 잡지를 읽고, 멋 내는 데만 관심 있는 학생들은 패션 잡지를 읽기도 했지만 나무라지 않았다. “첫발을 떼고 나면 조금씩 달라져요. ‘지피지기’라고 병법에도 나오잖아요. 속이 터질 때가 한 두번이겠어요? 한 시간 내내 잡담과 우스개 소리만 하다가 끝나기도 해요. 지켜보다 혈압이 올라서 교실에서 뛰쳐나오기도 여러번이었죠. 그런데 아이들이 그러다가도 ‘우리 너무 심하지 않냐’ 하며 다시 책으로 돌아가더라고요.”

백 교사는 자기 성공만을 위해 미친 듯 달리며 사는 세상에 도란도란 독서 운동이 순화작용을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 발령받고 천하의 영재를 가르치는 기쁨을 누리려는 순간 아이들의 두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그 아이들마저도 상처투성이였다는 데 또 한번 놀랐다”고 했다. 부유한 가정에 훤칠한 외모까지 다 갖춘 듯 보이는 아이들이 밤에 전화를 해서 펑펑 울고, 죽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며 살고 어차피 약육강식이라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약자가 되는 건 부끄러운, 죽기보다 싫은 일인 거죠.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를 배우지 못한 채로 자라는데, 그런 아이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 엘리트가 된다는 게 섬뜩하지 않나요. 애들 학원 시간 때문에 학급잔치 한 번 할 시간이 없더군요.” 그는 책이 모든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남을 돌아볼 아량을 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친구와 독서 활동을 공유하는 게 정서 함양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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