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살아 온 세입자가 재건축을 앞두고 집을 비우지 않자 불을 지른 집주인에게 국민참여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집주인은 배심원 8명이 유죄평결을 내리자 고개를 떨궜다.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부장 김재환)는 18일 국민참여재판을 열어 자신 소유의 집에 일부러 불을 낸 혐의(일반건조물방화 등)로 기소된 배모(44ㆍ여)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세입자를 수 차례 협박했고 범죄 동기와 수법으로 미뤄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다만 방화로 인한 인명 피해가 없고 재산피해가 크지 않은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배씨 소유의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연립주택은 2008년 재건축정비사업구역에 포함됐다. 재건축 시공사가 2012년 8월 28일까지 세입자 이주 시 집주인인 자신이 부담해야 할 이사비용 1,000만원을 대신 주겠다고 하자 배씨는 세입자 오모(34ㆍ여)씨에게 기한 내에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오씨는 2003년 3월부터 가족들과 함께 이 곳에서 살아왔다. 배씨는 '집을 비우지 않으면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성 휴대폰 문자메시지도 여러 차례 보냈다.
하지만 전세금 4,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오씨가 짐을 빼지 않고 버티자 지난해 9월8일 배씨는 열쇠 수리공을 불러 문을 강제로 연 뒤 옷가지를 모아 놓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 불은 약 15분 동안 타올라 100여 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배씨 남편은 이날 법정에서 "사업 실패로 돈이 없어 당장 전세금을 빼주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법원 관계자는 "재개발 지역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리는 평결"이라고 평가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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