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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88> 벽안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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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88> 벽안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입력
2013.03.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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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자택인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유언으로 이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 할 태극기를 같이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인 그와 이 전 대통령의 운명적인 만남은 33년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다. 당시 일본의 침략 문제를 다루던 국제연맹회의에 이 전 대통령이 참석했고, 어머니와 함께 여행 하던 그가 같은 호텔에 묵게 된 것이다.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던 이 전 대통령은 관심을 가져 준 그에게 마음이 끌렸고 이것이 인연이 돼 34년 10월 미국 뉴욕에서 결혼했다. 이 때 이승만의 나이 59세, 프란체스카는 34세였으며, 둘은 이미 한 차례 결혼과 이혼의 아픔을 겪은 시기였다.

이부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프란체스카는 평생을 이승만의 아내로 살았다.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을 영부인으로 인정하기 어려웠던 한국인들은 한 때 그를 "호주댁"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구분하지 못했던 당시 시대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승만이 광복 후 귀국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일부 국민은 이를 못마땅히 여겼다. 하지만 프란체스카 여사는 평생을 이승만의 아내 역할과 비서의 임무까지 견뎌내며 희생적인 봉사를 통해 훌륭한 경무대의 안주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48년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경무대로 거처를 옮긴 그는 채 2년이 안돼 한국전쟁이라는 크나큰 시련을 맞게 됐다. 60년 3ㆍ15 부정선거 여파로 이 전 대통령이 하야하자 함께 망명길에 오른 그는 65년 머나먼 땅 하와이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던 남편을 먼저 보낼 수 박에 없었다.

이 전 대통령 서거 뒤 남편을 잃은 시름 속에 모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5년 여를 보낸 그는 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로 귀국해 양자인 이인수씨의 가족과 함께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 기거하며 방문객 접견 등으로 여생을 보냈다.

병을 앓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생을 마친 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원에 먼저 자리한 이 전 대통령 묘소 옆에 나란히 묻혔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많은 영부인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국민들의 마음 속엔 프란체스카 여사의 이미지가 그리 깊이 다가와있진 않은 듯 하다. 하지만 푸른 눈을 가졌으나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그가 간직했던 마음은 기리 새겨 볼 일이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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