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의미 있는 첫 승이었다. 주변의 따가운 눈총에서 벗어났고 4회 징크스도 없었다. 의아해 하던 동료들의 신뢰를 회복했고 자신감까지 얻었다. 하지만 높은 제구와 많은 투구수는 여전히 숙제였다. '괴물' 류현진(26ㆍLA 다저스)이 시범경기 첫 승을 올렸다.
류현진은 18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캐멀백 랜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해 5.2이닝 동안 3안타 1실점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총 88개(스트라이크 54개)의 공을 던지면서 삼진은 6개였고, 볼넷은 2개였다. 대체적으로 공은 높았지만 시속 110㎞ 미만의 느린 커브를 적절히 던지면서 승리 투수가 됐다. 장단 16안타를 터뜨린 다저스의 11-1 승리. 4번째 선발 등판 만에 따낸 공식 경기 1승(2패ㆍ4.41)이었다.
일단 큰 고비는 넘겼다. 류현진은 앞서 3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난타를 당했고 주변의 시선은 차갑게 식었다. 다저스가 마케팅을 목적으로 무리해서 거금을 쓴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국내 무대를 주름잡던 직구와 체인지업은 위력적이지 않았다. 여전히 미끄러운 공인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 속에 예리한 맛이 없었다. 현지 언론은 한국 괴물을 "평범한 투수"라고 까지 표현했다.
하지만 마침내 1승을 따내며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전지훈련 당시 '담배 논란'을 일으켰던 켄 거닉 다저스 전담기자는 "류현진이 마운드를 지배하는 투구를 보여줬다"며 "선발 후보들의 컨디션 난조 속에 희망이 됐다"고 호평했다. 포수 A.J. 엘리스는 "직구가 좋았고 3회 2명의 타자들을 볼넷으로 출루시켰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위기를 넘겼다"며 "스프링캠프 동안 변화구 구위가 발전하고 있는데 이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키가 될 것이다"고 했다.
문제가 됐던 4회 징크스도 없었다. 류현진은 그 동안 타순이 한 바퀴 돈 뒤 난타를 당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상대 타자들은 두 번째 타석부터 어렵지 않게 괴물의 공을 때렸다. 그러나 이날엔 공 11개로 4회를 완벽하게 막았고 5회 삼자범퇴, 6회 2명의 타자도 가볍게 요리했다.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의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는 호평 그대로였다.
반면 실점 장면은 아쉬웠다. 류현진은 1회 선두 타자 카를로스 고메스에게 좌전 안타를 내준 뒤 1사 후 도루까지 허용했다. 어설프게 커브를 잡아 당긴 3번 조나단 루크로이의 타구는 빗맞은 안타로 이어지며 순식간에 1사 1ㆍ3루가 됐다. 류현진은 결국 4번 알렉스 곤살레스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내줬다.
3회 2개의 볼넷을 연거푸 허용한 것도 아찔한 장면이다. 다행히 후속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쳤지만 자칫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뻔했다. 여기에 다소 많은 풀카운트 승부도 개선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류현진은 이날 상대한 22타자 중 7명의 타자와 풀카운트 승부를 벌였다. 3회까지 투구수는 무려 60개였다.
그래도 일단 류현진은 순리대로 가겠다는 뜻을 보였다. 류현진은 경기 후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첫 목표가 아니다"며 "시즌을 잘 준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다리던 첫 승을 따냈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개막전까지 페이스를 끌어올리겠다 구상이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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