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직원들에게 정치적 활동을 직접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통합당이 제시한 '원장님 지시ㆍ강조 말씀' 자료에는 노골적으로 선거와 국회입법 과정에 개입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특히 "4대강사업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라" "국정성과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부족하다"는 등의 문구는 국정원을 아직도 정권안보기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정원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도 넘는 종북활동 등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원이 앞장서 대통령님과 정부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젊은 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등의 표현은 그 수준이 아니다. 국정원 스스로가 조직을 정권이나 정파의 보위, 또는 홍보를 위한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국정원을 현재의 위기상황으로 몰아넣는 원인의 태반은 조직의 존재목적을 망각한 정치적 구태를 털어내지 못한 데 있다. 국가안보보다는 정권의 이익을 더 살피다 보니, 명색이 국가최고정보기관원이란 이들이 외국사절단의 호텔방이나 뒤진다거나 몰래 댓글질이나 하다 들키는 따위의 한심한 행태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번 민주당 공개자료가 사실이라면 직접책임은 원 원장에 있거니와, 근본적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경력, 자질과 무관하게 다만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임명할 때 이미 그 역할을 주문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제발 국가안보를 위한 대공ㆍ해외정보, 방첩업무 전담조직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남재준 신임 원장 내정자가 청문회에서 "목숨 걸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 "공직자는 정권 아닌 조국에 충성해야" "국정원의 가장 큰 책무는 확고한 안보태세 확립"이라고 단언한 만큼 이번에야말로 악습의 고리를 끊게 되기를 기대한다. 자료에 나타난 원 원장의 지시는 국정원법의 정치관여 금지조항을 어긴 명백한 실정법 위반행위다. 수사를 통해 진위와 전모를 밝히고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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