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1일 취임 뒤 첫 회의에서 “더 이상 ‘나’는 없다, 오직 ‘우리’ 만이 있을 뿐이다”며 팀플레이를 강조했다. 외톨이형 정치인이란 그간의 평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었다. 정치에서 단독 플레이에 능했던 케리는 취미도 윈드서핑이나 사이클링 같은 것이었다. 오랜 기간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았지만 동료 의원들보다 외국 정상들과 친교가 더 두터운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취임 2개월째를 맞는 케리가 이번에는 그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워싱턴의 외톨이가 되고 있다. 그는 아직 국무부에 자신의 팀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의회 보좌진 중 7명만이 국무부에서 자리를 찾았다. 요직인 차기 대변인이나 연설문 작성자는 백악관 사람으로 채워졌다. 공석 중인 동아시아ㆍ태평양 차관보 역시 백악관 입김이 강한 인물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무대에서도 케리 특유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6일까지 유럽과 중동 9개국을 순방했지만 성과를 논하는 호평은 없었다. 오히려 이탈리아 방문 때 약속한 시리아 반군과의 만남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는 조 바이든 부통령이 나서 반군을 다독였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케리의 영역인 외교에서 입지를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이 자신의 외교 색깔을 주시하는 것도 케리로선 부담이다. 그는 의원 시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시리아 반군 지원 반대, 중동평화 협상 지연을 비판했다. 그런 탓인지 케리는 오바마의 신임이 여전한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와 만날 때는 누구도 방해하지 말라고 비서진에 특명을 내리는 등 신중한 행보를 하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은 이런 케리의 모습에 대해 “새 국무장관이 오바마의 영토에는 (그의) 팀이 없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리는 평소 1980년대 중반 미국프로농구(NBA) 보스턴 셀틱스의 전설적인 선수인 빌 월튼을 닮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팀이 위기일 때 투입되는 특급 식스맨이나 백업맨으로 활약한 월튼은 뛰어난 플레이보다는 패스를 가장 잘하고, 팀의 약점을 메워주는 역할로 더 평가 받았다. ‘케리 외교’는 세계를 누비던 전임 힐러리 클린턴 식의 순방외교보다는 워싱턴에서 다른 정책결정자들을 도와주는 방식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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