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이사를 했다. 이사라고 해야 집도 더 좁고 같은 단지 안에서 동만 바뀔 뿐인데 굳이 옮긴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가 사는 빌라는 3층짜리 연립주택 네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이번에 이사한 동만 1층에 담장으로 둘러쳐진 자그마한 땅이 붙어 있어서, 비록 개인 소유는 아니지만 자기 집 마당처럼 화초도 기르고 텃밭도 가꿀 수가 있다. 맨 처음 연달아 길게 이어져 있는 이 마당을 보고 반해서 언젠가는 저 집들 중 하나를 내 집으로 만들리라 마음먹었는데 드디어 뜻을 이룬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아야지 생각했다.
마당 한 켠에 장항아리를 내놓아 옹기종기 햇볕을 쪼이게 하고, 어릴 적 그랬듯이 대바구니를 들고나가 질경이를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다. 어쩌다 내 집 식구가 된 고양이 네 마리를 마당에 풀어놓으니 눈물이 핑 돌며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늦여름에는 봄에 심을 요량으로 길가에 핀 맨드라미, 분꽃, 봉숭아 꽃씨를 받아서 보관해두었다. 김장독을 묻고 배추김치와 동치미를 가득 채워놓고 나니 드디어 집에 대한 나의 이상은 완성되었다.
지난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쌓인 눈이 녹을 새가 없었는데, 어쩌다 녹아서 군데군데 흙이 드러나는 곳에는 눈 밑에서 보랏빛 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아, 하고 탄성을 지르다 그래, 이게 언젠가 봤던 풍경이지 하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서울에도 동네 뒷산에 시냇물이 흘렀고, 아직 얼음 위에 눈이 덮여 있는 동안에도 냇가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르는 것을 보며 무척 신기해했었다. 눈 밑에서 올라오는 싹들을 보며 생각했다. 결국 나는 어릴 적 엄마의 마당을 내 집 마당에 옮겨놓으며 행복해하고 있구나. 내가 꿈꿔온 집은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면 어떤 장소에 머무르며 살다가 죽는다. 이 점에서 사람은 다 똑같다. 한 장소에 나서 먹고 싸고 일하고 사랑하고 죽는다. 이것은 지구라는 별에 나서 살다 가는 유한한 생명체로서 인간이 처한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다. 전통사회의 사람들은 이런 기본적인 인간 삶의 조건을 결코 망각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지혜, 종교와 예술은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호소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의 진실한 감정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움이라든가 올바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실은 이런 보편적 사실에 기초해 있다. 그것은 바로 특정한 장소에 서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 삶의 조건을 토대로 세계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 우리가 선망해온 '유토피아'(='장소 없음')는 구체적인 장소에 결부된 인간 삶의 조건을 무시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토피아'를 향한 진보의 길은 실은 장소의 파괴, 기억의 상실 과정이었고, 고향을 없애는 과정이었다. 그 결과 인간을 위한다는 '유토피아'가 기묘하게도 인간을 쓸모 없는 존재로 배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향과 구체적인 장소를 상실한 '유토피아'는 결국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장소와 기억, 고향을 떠나서 인간은 살 수가 없고, 장소와 기억이 한데 합쳐진 '고향'이야말로 진정한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청사진에는 고향도, '인간'도 없다. 사대강사업에도, 용산개발의 청사진에도 휘황찬란한 미래에 대한 약속은 있을지언정 구체적인 장소와 기억, 인간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모든 것이 돈에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 그 사이 불도저에 밀리고 굉음소리에 묻혀 집과 고향과 농토와 거기 서식해 살아가던 숱한 목숨들이 사라져갔다. 사대강사업은 이미 그 총체적 부실이 폭로되었고, 용산개발사업은 침몰하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대규모사업들은 인간의 조건을 망각한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불타오르던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들렸던 절박한 외침, "여기 사람이 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의 말 앞에 다시 가슴이 울컥해진다.
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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