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을 북한에 넘겨주면 서울이 위험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 나라와 국민의 안녕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가. 이건 역적에 해당한다."
"수도권 방어의 생명선인 NLL 포기는 독도 포기보다 훨씬 심각한 안보 파괴이고 매국이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 제기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2월 "허위 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밝힌 이후 인터넷이나 보수언론에서 나오고 있는 글이다. NLL 포기 발언이 나온 2007년 남북정상회담, 즉 10ㆍ4선언을 '역적 모의'로 규정하는 보수 논객도 있다. "NLL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진위에 대해 검찰이 사실로 보는 마당에 이런 글이 나오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문득 친인척 비리 의혹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던 노 전 대통령이 이제는 역적에 매국노로 몰리는 상황을 지하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고, 대통령 기록물이라는 것도 30년이 지난 다음에야 공개될 판이니 치욕적인 낙인을 모면할 길이 없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이들은 NLL 포기 발언은 없었다고 하지만 국가정보원이 가진 발췌문은 물론이고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까지 들여다본 검찰 발표에 신빙성을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상회담 과정에서 그와 같은 발언이 나온 배경, 맥락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어 여러 의문이 생긴다.
예를 하나 들겠다. 미국의 대북 금융 제재로 6자 회담이 교착에 빠진 2006년 말 북한의 핵실험 직후 베이징에서 북미 간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북한이 핵개발 포기를 언급했다는 말이 청와대와 통일부에서 흘러나왔지만 정작 외교통상부에서는 시큰둥했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렸다는 것이다. 북한이 골백번도 더 되뇌던 레퍼토리로, 대화의 진전이 이뤄진 상황이라 볼 수 없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면 사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선언문, 즉 10ㆍ4선언의 정확한 명칭은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다. 선언에 담긴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어로구역 지정, 평화수역 설정,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은 NLL 문제가 논의되지 않고는 쉽게 합의할 수 없는 내용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 전제 하에서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평가하는 게 공정하다고 할 것이다. 이 발언의 전후에 어떤 내용이 있으며 NLL과 관련해 북한에 요구한 게 있는지, 없는지 혹은 무엇을 요구했는지가 사실 중요하다. 단순히 한 대목을 뚝 떼내 발언의 진위를 가리고 'NLL 포기''매국행위'로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상회담이라는 게 상호 이익을 주고 받는 큰 협상의 장임을 감안할 때 당연히 이익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NLL 발언의 무게를 달아보는 게 마땅하다. 이런 연후에 평화를 위해 마찰의 소지를 없앤 전략적 선택인지 아니면 공허한 평화를 위해 전략적 가치를 포기한 행위인지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북한도 "10ㆍ4 선언에 명기된 조선 서해서의 공동어로와 평화수역 설정 문제는 철두철미 북방한계선 자체의 불법 무법성을 전제로 한 북남 합의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판이니 NLL 발언의 맥락과 취지를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14일 정문헌 의원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부실 수사로 규정하고 서울고검에 항고했지만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법적으로 허용이 돼 있는 만큼 여야가 합의로 대화록을 보고 종합적 판단을 해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는 여야의 자세가 달라지지 않겠지만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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