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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착각은 자유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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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착각은 자유라지만

입력
2013.03.18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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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도 더 전에 눈길에 미끄러져 이가 부러지고 목을 다친 분을 병실로 찾아간 일이 있다. 그가 사고를 당한 건 토요일 밤이었는데, 다행히 잘 아는 병원이 있어 다음날 일요일인데도 디스크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고생이 막심하다. 목을 다쳐서 걸음도 잘 걷지 못한다고 한다. 인체에서 경추(頸椎), 그러니까 목뼈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됐다.

그날 병문안을 마치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벽면에 이상한 글자가 씌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두 여성의 얼굴사진 위에 ‘신설식원’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아항, 이 사람들이 새로 뽑은 직원, 그러니까 신입직원을 잘못 썼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원래 세상은 오자투성이고 내 눈엔 직업병처럼 틀린 것만 잘 보이니까.

그러나 좀 더 다가가 살펴보니 네 글자의 윗부분을 처마처럼 덮은 종이 때문에 내가 잘못 읽은 것이었다. 그 글자는 ‘친절직원’이었다. 친절한 병원 직원을 어떻게, 얼마 간격으로 선정하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환자에게 잘 대해주고 맡은 일을 훌륭히 해내는 사람들일 것이다. 웃는 얼굴도 밝고 예뻐 보였다.

비슷한 일이 또 있다. 이건 내가 착각한 게 아니다. 어떤 사람(그는 교사다)이 차를 타고 가던 중에 ‘한국 학대학원’이라는 안내판을 보았다. 그는 그걸 보고 단박에 기숙학원을 떠올렸다. ‘아니, 수험생들을 한데 몰아넣고 가르치는 건 좋지만 학대까지 한단 말이야?’, 이런 생각에 비분강개한 그는 운전 중인 동료에게 “세상에, 한국 학대학원이라는 것도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동료는 거의 운전대를 놓칠 만큼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면서 “야, 그건 한국 학대학원이 아니라 한국학 대학원이야, 한국학 대학원.”이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한국학중앙연구원(예전의 정신문화연구원)이 있는 곳이었다.

이번엔 다시 그 교사와 비슷한 나의 착각. 몇 년 전에 친구들과 강화도 마니산에 간 일이 있다. 마니산은 남한지역에서 기가 제일 센 곳이라나 뭐라나 하는 곳이다. 그래서 해가 바뀌면 연례행사처럼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한 해 동안의 건강과 무사 산행을 기원하기 위해 단체 등산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런 생각으로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마니산에 가는 길에 나는 아주 기묘하고 해괴한 간판을 보았다. ‘김포시장 애인단체.’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얼라라? 김포시장은 애인이 몇 명이나 되길래 이런 단체까지 생겼으까? 애인단체 노존가?”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 ‘아차, 내가 착각했구나’ 하고 알게 됐다. 골프칠 때 티샷을 하면서 잘못된 걸 금세 알 듯이. 친구들은 그 간판이 ‘김포시 장애인단체’라는 걸 내가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웃기려고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원래 싱거운 소리 잘 하는 나는 잠깐 사이에 바보가 되고 말았다.

문제의 ‘한국학 대학원’도, ‘김포시장 애인단체’도 표기는 이렇게 돼 있지 않다. ‘한국학대학원’, ‘김포시장애인단체’라고 글자를 다 붙여 써놓아 제멋대로 읽고 착각하게 돼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걸 그렇게 엉뚱하게 읽어서야 되나? 사람은 제 관심사에 맞는 착각을 하기 마련인가 보다. 그러면 교사는 교사니까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아 학대학원이라고 생각한 거고, 나는 여자에 관심이 많아서 애인단체라고 착각한 건가? 착각은 자유다. 오늘도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는 게 아니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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