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중구의 한 전통시장. "위력이 센 BB탄총을 구할 수 있냐"고 물어 찾아간 가게 주인은 구석의 서랍에서 조심스럽게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생뚱맞게도 완구점이 아닌 전자제품 가게였다. 주인은 "개조한 BB탄총인데 37만원에 가져가면 된다. 이 가격이면 정말 싼 것"이라고 흥정을 걸었다.
개조에 쓰인 원래 총기는 대만 WE사가 제작한 가스총 '베이비 하이카파'였다. 가스를 주입해 화력을 높인 BB탄총으로 합법적으로 판매된다. 하지만 주인이 내보인 총은 플라스틱으로 된 부품 중 손잡이만 빼고 총열 등 거의 대부분을 쇠로 바꿨다. 그러고선 시중가 27만원에 10만원을 더 붙인 것이다. 주인은 "일반 BB탄총보다 3,4배 이상 위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달 2일 밤 서울 도심에서 난동을 부린 주한미군 사건으로 BB탄총의 위험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당시 최초 신고자는 미군이 쏜 BB탄총이 개조되지 않은 것인데도 실제 총으로 오인해 112신고를 했다. 하지만 시중에선 이보다 훨씬 위험천만한 개조 BB탄총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현행 총포ㆍ도검ㆍ화약류 등 단속법에 따르면 완구용 BB탄총은 BB탄 무게가 0.2g, 발사된 BB탄의 위력은 0.02㎏m 이하여야 한다. 1㎏m는 1㎏ 무게의 물체를 1m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뜻한다.
그러나 개조한 BB탄총의 위력은 이 같은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일반 BB탄총은 A4용지 5장을 겨우 뚫을 정도지만 개조한 것은 알루미늄 캔까지 한방에 관통한다. 또 눈에 잘 띄는 금색, 주황색을 총열 등에 칠해 완구임을 알리는 일반 BB탄총에 비해 개조한 총은 진짜 총과 생김새마저 똑같다. 언제든지 범죄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 청계천 완구거리의 한 완구점에서 근무하는 김모(61)씨는 "개조한 BB탄총은 두꺼운 박스 종이도 쉽게 관통해 사람이 맞으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했다.
자칫 살상무기가 될 수 있는 불법 개조 BB탄총을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가스총을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일반 스프링보다 탄성력이 3배 이상 강한 해머 스프링과 개조용 총열 등을 버젓이 팔고 있다. 시중에서 파는 가스총 권총은 20만~40만원 수준이지만 돈을 얹어 주면 개조한 총을 구할 수 있다. BB탄총을 파는 한 상인은 "개조 부품을 갖고 오면 5만~6만원만 받고 몰래 개조를 해 주는 곳들도 이태원이나 용산 등지에 있다"고 말했다.
BB탄총 개조 방법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널려 있다. 서바이벌 게임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박모(32)씨는 "총기 마니아들은 실제와 같은 느낌을 원하기 때문에 비싸더라도 구입한 BB탄총을 스스로 튜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시로 단속에 나서지만 개조 BB탄총은 점점 더 은밀하게 거래되는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임에도 개조 BB탄총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실제 총을 갖고 싶어 하는 총기마니아들과 개조 비용이 쏠쏠한 업자들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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