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10분 쉬었다가 토론 합시다."(강사 A씨)
"퀴즈 하나 더 내 주세요. 그 다음에 쉬어요."(학생들)
강사가 "돈을 모아 술 한 통을 산 친구 둘이 여름에 사람들이 몰린 곳에서 다 팔아 치웠는데도 돈이 한 푼도 남지 않았어요. 이유가 뭘까요?"라고 묻자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손을 치켜들었다. "술통 값이 비싸다""번 돈을 다른 데 썼다" 등의 답들이 쏟아지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팔았다"는 대답에 강사가 "정답"을 외쳤다. "다른 친구들 답도 좋았다"는 칭찬도 잊지 않는다.
17일 오후 이런 특이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대치동의 이 학원은 '하브루타'(짝을 지어 대화 토론 논쟁하는 학습법)라는 유대인식 토론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이다. 탈무드에서 발췌한 내용을 토대로 토론을 하는, 입시 교육과는 무관해 보이는 이 수업이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에서 깜짝 인기를 끌고 있다.
대치동의 유대인식 교육 전문 학원 2곳은 특별한 광고 없이도 학기 시작 전 각 30명, 50명인 정원을 넘겼고, 10여 명이 대기 중이다. 이날 오후 두 학원 중 한 곳인 탈무드지혜교육에서는 입양한 한국인 딸에게 유대인식 교육을 시켜 하버드대에 보낸 미 변호사 힐 마골린씨의 저서 출간을 앞두고 저자 간담회도 열렸는데, 알음알음 찾아온 학부모들이 몰려 자리를 찾지 못하는 등 애를 먹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유대인 교육 관련 책 판매도 크게 늘어 전년 대비 49%나 상승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창조경제'가 이스라엘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은 더욱 뜨겁다. 2011년 말 대치동에 유대인식 토론 학원을 처음 차린 오철규(45) 하브루타교육 원장은 "미국에서 유학이나 해외 근무를 하며 유대인 교육의 장점을 알게 된 이들 중 상당수가 귀국 후 유대인식 교육을 원하고 있다"며 "창조경제도 인기에 한 몫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미국서 3년을 살다 돌아와 1년간 유대인식 교육 학원을 다니고 있는 이준성(10)군의 어머니는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소극적이던 아이가 질문이 많아지고 뭐든 열심히 해보려 한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정혜주(15)양은 "내 의견을 말하는 토론을 하다 보니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기고 지난주 생전 처음 학급 임원 선거에 출마해 부회장에 당선됐다"고 기뻐했다.
김정완 한국하브루타교육연구소 이사는 "많은 학부모들이 좋은 대학 가는 것이 끝이 아니라 자기만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살아남는 시대라는 것을 공감하고 있다"며 "유대인식 토론 교육이 그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교육 열풍의 단면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김승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실장은 "토론식 교육이 좋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왜 사교육 시장에서 먼저 상품으로 만들어놓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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