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두 가지를 묻고 싶다. 어떤 생각으로 아들을 서울 영훈국제중 사회적배려대상자(사배자) 전형에 지원하게 했는지, 이게 첫 번째다. 우리 사회 소외계층을 겨냥해 만든 사배자 전형에 재벌가 아들이 입학한 연유가 궁금해서다. 또 하나는, 아들 때문에 국제중은 물론이고 외국어고 자율형사립고 사배자 전형도 덩달아 도마에 오르면서 눈총을 받고 있는데, 이거에 대한 인식이다.
회신은 난망하겠지만 같은 학부모 입장에서 짐작하건대 '동기' 하나만은 유추가 가능할 것 같다. "일반 중학교보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 시키고 싶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이 부회장의 심정에 공감하리라 여겨진다.
'사배자 전형 쇼크'의 단초를 이 부회장 아들 입학이 제공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중 지원 이유 딱 한 가지만 놓고 보면 괜한 트집을 잡을 것도 없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적절성이 아닌가 싶다. "사회의 약자를 위해 만들어진 사배자 전형에 재벌 총수 손자가 굳이 지원했어야 했느냐"는 따짐에 이 부회장은 어떻게 대답할까. "자격이 됐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말한다면 반격이 쉽지는 않다. 그의 아들은 사배자 전형 지원 조건에 부합하는 건 맞다. 부모가 이혼해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에 해당돼서다. '한부모가족 지원법' 적용을 받는 아동은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라고 이 전형은 굳게 말뚝을 박아놓고 있다. 규정 대로라면 이 부회장 아들의 국제중 입학은 '무죄'라는 건 분명한 팩트지만, 파장은 멈출 기미가 없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사배자 전형 합격자의 상당수가 고소득층 자녀인걸로 알려지면서 서울시교육청이 '특별감사' 라는 칼 까지 빼들었다. 시의회에서 연일 의혹을 제기하는데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비리를 파헤치라"는 요구에 국제중을 뒤지고 있는 교육당국이 뭘 내놓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특별감사인 만큼 뭐든 먹이 하나는 물어오지 않겠나.
그런데, 국제중에 돌을 던지는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사배자 전형에 대한 본질이다. 왜 논란이 됐는지 고민과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핵심은 쏙 빼놓고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사배자 전형이 탄생한 배경을 아는가. 국제중 특수목적고 자율고 등이 소위 '귀족학교' 시비에 휘말리자 교육당국이 여론을 의식해 꺼낸 카드다. 가난하거나 장애인 가정 자녀거나 소년소녀 가장이거나, 아니면 다문화가족, 북한이탈주민 자녀 같은 소외 부류에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명분은 썩 괜찮았다. 졸지에 '그들만의 학교'로 나 앉게 됐지만, 그래도 해당 학교들도 수긍했다. 취지에 공감했으니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걸 교육당국은 간과했다. 사배자 전형 비율을 학교 자율에 맡겼어야 했는데, 정원의 20%(청심국제중은 10%)로 묶어 버린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고려 않고 강행했다. 사달이 난 건 그래서다.
국제중이나 특목고 , 자율고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봐라. 먹고 살기 조차 빠듯한 경제적 배려 대상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자녀 가정, 환경미화원 자녀, 뭐 이런 '순수'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들로만 총 정원의 20%를 채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소외계층들이 지원 안 해서다. 설령 입학하더라도'왕따'라는 괴물이 이들을 짓누른다. 학교 가는 게 두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사배자 전형에 합격한 소외계층 자녀들이 극단적인 선택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경제적 배려 대상자 지원이 적다보니 학교는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 숫자를 늘리는 거고, 이런 '틈새 시장'을 돈 있는 가정들이 그냥 둘리 없다.
사배자 전형 합격자 상당수가 고소득층 자녀인 건 순전히 제도 때문이다. 현실을 반영 안 한 엉터리 제도가 부유층을 부도덕 집단으로 만든 것이다.
이제 해야 할 건 제도 대수술이다. 교육당국이 사배자 전형의 모순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 본 적이 있다면 메스 대는 걸 주저해선 안 된다. 잘못된 제도임을 인정한 뒤 정말 돈 없고 힘 없는 가정 자녀도 사배자 전형에 당당하게 지원하고, 부끄럼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있는 집 자녀 지원을 비난하는 건 다음이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