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의 사상자를 낸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공장 사일로(저장탑) 폭발사고 당일 저장탑 보수공사를 하던 근로자가 이상 조짐을 발견하고 이를 하청업체를 통해 사측에 알렸으나 묵살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국 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는 지난 14일 폭발사고 당시 생존자 A씨가 노조와 면담 과정에서 "사고 발생 몇 시간 전에 저장탑과 연결된 배관에 이상 조짐이 있어 이를 공사 하청업체인 유한기술 측 안전관리자 B씨에게 알렸다"고 말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사고 당일 오후 비계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저장탑과 연결된 직경 3인치 배관이 갑자기 심하게 흔들렸다"며 "이런 사실을 B씨에게 알리고 사측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한 것으로 노조는 전했다. 사고 당시 심한 화상을 입은 B씨는 현재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3인치 배관은 저장탑 내 잔류 가스를 없애는 퍼지 작업(가스 청소)을 위해 저장탑과 연결된 질소 주입 배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관계자는 "질소 주입 배관이 심하게 흔들렸다는 것은 사측의 주장과 달리 당시 퍼지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었거나, 저장탑 내 잔류 가스가 배관 쪽으로 흘러들어간 뒤 외부 온도 상승으로 인해 팽창하면서 나타난 현상일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같은 이상 조짐은 대림산업 측에도 보고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공사 착수 전까지도 사측의 퍼지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거나 부실하게 진행돼 결국 저장탑 내부 가연성 잔류 가스가 폭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사고 당일 오후 저장탑과 인접한 또 다른 저장탑에서는 각종 배관 교체작업을 하던 다른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회사 측의 퍼지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아 위험하다"며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철수했다.
그러나 당시 유한기술 측은 대림산업 측으로부터 퍼지 작업이 완료돼 용접 등 화기작업을 실시하라는 작업 지시를 받고 작업을 계속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노조 측은 대림산업 측이 "저장탑에 이상 조짐이 있다"는 B씨의 보고를 받고도 묵살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통상 고밀도폴리에틸렌 생산공정 라인에 설치된 배관을 차단하는 블라인드 작업과 저장탑 퍼지 작업을 끝내려면 1주일 정도 소요되는데 대림산업은 이틀 만에 끝냈다"며 "사측의 부실 작업에다 이상 징후 보고 묵살이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이에 대해 대림산업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유한기술 측도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놓고 대림산업과 작업 근로자들이 각각 분진, 가스로 인한 것이라고 엇갈린 주장을 함에 따라 이 부분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부상자를 포함한 당시 현장 근로자 18명의 진술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대림산업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여수경찰서는 이날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현장 감정과 수사 진행 상황을 발표했다. 국과수는 지난 15일부터 이틀 동안 현장 감정을 하고 증거 자료를 확보했다. 자료 분석 작업은 보름가량 걸릴 예정이다.
여수=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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