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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나는 폭력학생이었다... 연극 덕에 내가 변했으니까 아이들도 변할 수 있다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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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나는 폭력학생이었다... 연극 덕에 내가 변했으니까 아이들도 변할 수 있다 믿어"

입력
2013.03.1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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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란 질문 끄집어내는 사람이자람에게서 '사천가' 이끌어내… 연출은 스스로를 찾게 돕는 것문제아 변화시키는 청소년연극되보고 체험해 보니 삶 달리보여… 짧은 시간에 아이들 변화해 놀라연극으로 분노조절 배워아버지와 갈등, 중학교때 문제아 고교때 연극에 빠지고 은사 만나학교폭력, 순간에 해결안돼다만 변할 수 있는 씨 뿌리는 것… 강요 말고 끊임없이 질문 던져야

아동청소년 연극 전문극단 북새통의 예술감독이자 상임연출가이며 판소리창작 공연단체 '판소리만들기 자'의 예술감독이며 연극놀이전문가. 남인우(40)씨는 지금 가장 '핫'한 연출가다. 그가 판소리 소리꾼 이자람(34)씨와 만든 창작판소리 '억척가'는 19일 브라질에 이어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남미 공연에 오른다. 이보다 먼저 만든 창작판소리 '사천가'도 7월부터 한달 동안 서울 충무아트홀 공연이 잡혀있고 내년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공연한다. 모두 외국의 극장이 초청해서 정규공연으로 잡힌 것.

그가 연출하는 다른 작품은 4월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4월에는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땅속 두더지 두디'가 국립극장 청소년하늘극장에서, 5월에는 청소년 연극 '소년이 그랬다'가 국립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오른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판소리로 옮긴 창극 '내 이름은 오동구'는 6월에 국립극장 청소년하늘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3월에는 장기하 밴드의 백댄서로만 알려졌던 미미시스터즈의 이야기를 뼈대로 음악극 '시스터즈를 찾아서'를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연출이라고 하지만 쓰인 대본을 무대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자들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각본을 만들어내는 그의 연출 방식에 공연자도 객석도 환호하고 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온 그의 이런 장기는 어린이청소년 연극을 만들면서 탄생한 것. 그가 본격적인 어린이청소년 연극으로 2004년에 처음 선보인 '가믄장 아기'는 한국 작품으로는 21년만에 호주세계어린이청소년연극총회에 초대되기도 했다. 거칠었던 청소년기를 연극에 눈뜨면서 다스렸다는 그를 만났다.

-공연자들로부터 극을 이끌어낸다고요.

"자람씨가 창작 판소리를 만든다고 해요. 2007년 2월인가.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봐. 가져왔는데 이상하죠. 딴 것 좀 써봐. 딴 것 좀 써봐. 착하게 살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더라고요. 3개월만에 둘이 동시에 떠올랐어요. 브레히트다, '사천의 선인'! 그래서 '사천가'가 나왔어요. 재작년에 자람씨가 브레히트를 한번 더 하자는 거에요. 싫은데 했더니 제목이 억척어멈('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이라는 거예요. 좋잖아요. 하하하. 그래서 '억척가'가 나왔어요. 구조나 주제는 제가 잡아요. 하지만 작창은 절대적으로 자람이가 하지요. 판소리는 어려서부터 말과 리듬이 몸에 밴 사람만 쓸 수 있어요. 미미시스터즈는 처음에 옛날 시스터즈들에 대한 오마주 같은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너희가 왜 그걸 하고 싶은지를 쓰라고 했어요. 덕분에 자작곡이 없던 친구들이 자작곡이 나왔어요. 착하고 바느질도 잘하는 숫처녀가 한지공장 사장과 사랑에 빠져서 임신을 해요. 둘째부인이 되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도망쳐 나와요. 수원의 소금창고에서 낳은 아이가 자기 아버지예요. '할머니한테 받은 거는 으리으리한 집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돈도 아니고 그냥 배짱과 신념이다.'그 노래가 바로 '너의 DNA'예요. 화려한 삶 속에서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내 이야기 같은 거! 그걸 찾아내려면 자기한테 질문을 던져야지요. 아티스트에게는 스스로가 텍스트에요. 연출은 그걸 찾게 돕는 것 뿐이지요. 너를 응시해라. 일기 써라. 왜 너여야 하는지 물어라."

-연출가는 사람들의 질문을 끄집어내는 사람이네요.

"어린이 청소년극을 하면 희곡 주고 연극 하라고 안 하거든요. 그 친구들한테 질문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구조 짜고 움직임을 하게 하고 연극을 만들어요. 그러면서 아, 왜 다른 예술가들하고도 진작에 이런 작업을 못해봤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믄장 아기'를 할 때 작가한테 희곡을 받았지만 주어 동사로 되어 있는 문장만 달라 그리고는 배우들한테 너는 누구인데 이런 상황이면 무슨 말을 했을까, 그걸 한번 해보자 그랬어요.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도 달라져요. '가믄장 아이'를 하면서 생리가 더럽게 느껴진다는 남자 배우가 나중에는 면생리대를 꿰매서 여자친구한테 선물했어요."

-청소년 연극을 하면서도 그런 변화를 체험하셨나요?

"작년에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몸맘통 프로그램을 총괄감독 했어요. 요즘 고등학생이 자기 몸을 들여다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니까 남의 몸도 업신여기고 때리는 거다, 자기 몸이 귀중한 걸 알면 절대로 못한다. 그래서 무용하는 사람이랑 연극하는 사람이 같이 모여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남자 고등학생들이랑 작업을 하는데 선생님들이 처음에는 패닉이 왔어요. 10여년 전에 그런 말을 들었어요. 중학교에 예쁘장한 선생님이 발령을 받았는데 뒤에서 학생이 자위를 하더래요. 그래서 제가 시작할 때도 '각오 단단히 해라. 어린이 청소년들 절대로 순진하지 않다. 본능에 충실하다. 본능은 악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한 거다.' 예쁜 선생들이 와가지고 춤 추니까 위 아래로 훑어보기나 하고 움직이라면 욕설 뱉고 옆에 애 때리면서 '네가 해. OOO야'그러고. 그런데 석달만에 완전히 바뀌었어요. 처음에 전지 한 장 갖다 놓고 몸을 하나 그리라고 했더니 남자애들이 성기 그리고 털 그리고 별 짓을 다한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걸 보고는 차분하게 칠판에 식도부터 다 그리고 여자 남자 나체 사진 보여주고. 애들이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더니 굉장히 진지하게 접근하는 걸 보면서 달라지더래요. 몸을 성적인 도구로 바라보거나 은폐해왔는데 너무 다르니까요. 그러면서 '자기 몸에 손을 대봐라.'관절을 만져보니 움직이네? 어? 어?그러면서 바뀐 거예요. 몸한테 쪽지도 쓰게 하고. '내가 담배는 못 끊겠지만 폐야, 좀 참아다오.'친구들 몸을 구부려서 조각도 만들어보게 하고. 강사들이 북이랑 젬베를 가지고 두드리니까 안 하던 애들도 해보겠다고 손을 들더래요. 해보니까 신나지요. 자기들끼리 줄 좀 똑바로 서봐, OO들아, 하면서 풀리더래요. 마지막에는 조별로 5분에서 10분짜리를 작품을 발표하게 했는데 너무 잘해서 문화재단 사람들이 와보고 깜짝 놀랐어요."

-구체적인 방법이 있는 건가요?

"저는 이렇게 가르쳐요. 레모네이드게임이라고 모듬에서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을 움직임만으로 표현을 해요. 웨이터! 맞추면 도망가요. 안전한 데 도착하면 되고 중간에 잡히면 끌려오는 거예요. 괴물술래잡기. 천천히 느리게도 하고 마지막에는 술래를 괴물로 바꾸게 해요. 그러면 사람들이 놀라고 난리가 나요. 나중에 물어보죠. 아까 왜 소리 질렀냐고. 너무 무서웠대요. 그런데도 또해요. 그게 일상이라면 그렇게 못하지요. 가짜니까 두려움도 느끼고 발산도 하는 거예요. 그게 애즈이프(as if 누구처럼)예요. 소꿉장난도 똑같아요. 엄마로 아빠로 바뀌고 소꿉단지를 밥공기라고 해요. 연출도 하죠. 우리 아빠는 그렇게 안 한단 말이야. 괴물 하면 눈빛까지 달라지거든요. 그거 잡는다고 창자 뜯어먹는 거 안 한다고요. 가짜니까. 그러나 그 순간에는 다 믿어버리는 거죠. 이러면서 사람들은 내가 다뤄보지 못한 감정들을 꺼내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거지요. 한 때는 진짜 그 사람이 되어버리는 메소드 연기를 칭찬했는데 이게 배우한테 정신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는 미국에서 반성이 크게 일어났어요. 주관과 객관을 동시에 인식하면서 다뤄볼 수 있기 때문에 연극을 해보는 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괴물이 되면 잡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거기서 끝나야 된다는 걸 아는 거에요. 그래서 어릴 때 이렇게 놀아본 아이들이 자기 감정을 잘 다스리는 거거든요. 놀아보지 않은 아이들은 현실과 가상이 구분이 안되니까 끝까지 가보는 거에요. 내가 햄릿이 되어보니까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해요. 내가 해보니까 되어보니까 자리를 양보하게 돼요."

-제대로만 하면 어떤 '괴물'도 달라질까요?

"가정과 학교와 학생, 삼박자가 맞아야지요. 학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집에서 폭력에 시달리면 도루묵이에요. 그런데 저는 제가 달라졌기 때문에 달라질 거라고 확신을 해요. 여기(눈썹 곁의 흉터)는 주먹에 낀 징으로 맞아서 생긴 거에요. 저희 집이 송탄이었는데 중학교 때 반이 4반이면 졸업할 때는 한 반이 없어져요. 애들이 본드 마시고 수업 중에 튀어나가고. 저는 공부는 잘해서 반장이었는데 방위성금 500원 걷으려고 애들 막 때렸어요. 저희 아버지가 이웃 학교 교사였어요. 중1때 소풍을 갔는데 맥주캔을 하나 갖고 와서 20명이 나눠마신 거에요. 시골이니까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한테 '니네 딸 맥주 마시더라'전한 거예요. 아버지가 그날 들어보지도 않고 저를 야단치신 거에요. 한모금 마신 건데, 하니까 상을 엎었어요. 그때부터 아버지와 말도 안 했어요. 점차 때리고 맞는 관계로 발전하고. 고3때까지 아버지와 대화가 없었어요. 밖에서는 애들 때리고. 중학교 내내 그랬어요."

-어떻게 착해진 거예요?

"착해지지 않았어요. 공부는 잘했으니까 저 혼자 평택의 고등학교로 갔어요. 대학은 가야 저 인간(아버지)을 어떻게 할 수 있고 독립도 할 수 있다. 공부를 하는데 수학은 잘하는데 영어가 아무리 해도 50점을 못 넘겨요. 고 2때인가 서점에 갔더니 빨간책(시사영어사 영한대역)인데 한쪽은 영어 한쪽은 한글인데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그게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였어요. 그래서 연극반을 만들었어요. 지도교사가 필요해서 막 이화여대를 나오고 부임한 지구과학 선생님한테 사인만 받으려고 했는데 이 선생님이 팬심으로 저희를 따라다녔어요. 조명이 없으니까 선생님이 슬라이드 기계를 들고 비춰줬어요. 저는 연극반 없어질까봐 애들을 단속했어요. '빳다'로 때리면서 성적관리까지 했어요. 연극을 전공할 생각은 없었어요. 선생님이랑 서울에 가서 연극을 보고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교복을 다 잘라버린 거에요. 그래서 연극하겠다고 했어요."

-불량했던 시절이 지금 연극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나요?

"나 같은 애도 변했으니까 걔들도 바뀔 수 있다고 믿어요. 1999년 한예종 시절에 보호감찰 받는 애들과 1박2일로 제부도 가서 연극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림 그리라 그러고 그림으로 자기 이야기하라 그러고 그 이야기 들은 거 가지고 다른 역할 맡아가지고 연극을 했어요. 그런데 오토바이를 몇 대나 훔치고 팔에 하트 문신도 있고 거기서도 다른 애들 막 때리는 애가 있었어요. 걔 그림을 봤을 때는 말랑말랑한 게 속에 있어서 나를 좀 끄집어 내주세요 하는데 행동은 계속 인간되기를 거부하는 거예요. 끝나고 배를 타고 인천 월미도항으로 나오는데 배 안에서 제가 걔 멱살을 잡았어요. '나도 되는데 너 왜 안돼. 너 이렇게만 살다가 죽을 거야. 그럼 여기서 빠져 죽어. 뒈지라고.' 그랬는데 얘가 확 녹으면서 열일곱짜리 애가 되더라고. 가만히 눈물을 흘리더라구요. 그래서 끌어안고 막 울었어요."

-걘 어떻게 됐어요?

"그 친구가 지금 어떻게 사느냐는 몰라도 분명히 변화를 나도 느꼈고 걔도 느꼈고 그 느낌 때문에 나도 이렇게 살았다면 그 친구도 언젠가는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프로그램 나가는 친구들한테 꼭 이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는 신이 아니다. 변화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다만 우리는 변화할 수 있는 씨앗을 뿌리는 거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여러분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그 사람 자체에 있다. 그럴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바꾸려고 하지 말아라. 주입하려 하지 말아라.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만 던져주면 되는 거에요. 때리지 말라? 그래서 안 때려요. 대신 다른 걸로 가요. 때리고 싶은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계속 이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면 다른 에너지가, 다른 방식이 나오겠죠."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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