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뻔뻔한 이별편지 지인들과 해석하기…
점쟁이 지시대로 살아보기…
프랑스 개념미술 작가 소피 칼(60)은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재구성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사립탐정에게 자신을 뒤쫓으면서 사진을 찍게 해서 전시한다거나, 호텔에 청소부로 취직해 투숙객들이 남긴 흔적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하는 식이다.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한 그는 1970년대부터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등을 결합한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4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생존 여성작가로는 첫 회고전을 열었고, 2010년에는 사진작가의 최고 영예인 하셀블라드상을 받았다. 폴 오스터가 소피 칼과 가상의 인물을 혼합한 소설 '거대한 괴물'(1992)을 쓰자,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사는 자신을 찍은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6년 국내 번역 출간된 작품집 (마음산책 발행)는 이렇게 만든 작품집이다. 덕분에 국내에서는 미술계보다 문단에서 더 유명하다.
소피 칼의 첫 한국 개인전이 4월 30일까지 도산대로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린다. 전시 작품은 2005년부터 지난 해까지 작업한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시리즈 3편과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전시한 '잘 지내기 바랍니다' 7편이다.
13일 전시장에서 만난 소피 칼은 "(내 작품이 그린 작가의 삶은) 내 개인적인 삶이 아니다"라며 "일상을 찍을지 말지 선택하는 기준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가'이다"라고 말했다. "폴 오스터가 쓴 소설은 저와 가상인물을 섞은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에요. 그래서 진짜 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했죠. 소설대로 살아보고 그걸 사진으로 찍으려고 했는데, 폴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거절했어요. 그래서 내 미래를 말해 줄 점쟁이를 찾아갔죠."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는 이렇게 만든 세 편의 연작 시리즈다. 소피 칼은 점술가를 찾아가 자신의 미래를 보려면 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고 점술가의 지시에 따라 프랑스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사람들과 나눈 대화, 겪은 일 등을 사진, 비디오, 글로 기록했다. 소피는 "인생을 바꾸기 위해 폴 오스터와 점술가를 찾아갔지만,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는 실패했다"며 "하지만 어떤 룰을 정하고 그 룰을 따라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예술 작업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잘 지내길 바랍니다'는 당시 헤어진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에서 제목을 가져온 작품이다. 소피 칼은 '다른 여자들을 만나지 않고 당신만 만나는 게 어렵다'며 자기변명으로 가득한 이별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 끝에 '잘 지내길 바랍니다'란 뻔뻔한 인사말도 있었단다. 소피는 "완전히 끝내자는 건지, 나와 계속 사귈 생각이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친한 친구에게 이 편지를 '해석'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내친 김에 전문직 여성 107명에게 동일한 부탁을 했고, 이들의 답변을 사진, 비디오, 글로 정리해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소개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동화작가, 기자, 암호 전문가 등의 반응을 담은 7편을 선보인다.
독특하고 새로운 형식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전시이지만, 이미 꽤 많은 국내 팬들이 있던 터라 개막 전부터 입소문이 자자했다. 11일 프랑스문화원 영화 시사회, 13일 개막전에서 작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은 소피 칼의 인기를 증명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현대미술 수집가였다"며 "아버지 집 벽에 걸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게 처음 내 목표였다. 그런 면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02) 3446-3137
조르주 루스와 디디에 망코보니…佛작가 전시 봇물올 봄에는 유독 프랑스 작가들의 전시회가 풍성하다. 6월 8일까지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프랑스 젊은 작가전'은 프랑스 작가 12명을 국내 첫 소개하는 전시다. '유령의 집'을 테마로 설치, 회화, 드로잉, 조각, 영화 등 41점을 선보인다. 프랑스 해외문화진흥원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프랑스 큐레이터 가엘 샤르보와 공동 기획한 전시다. (02)3448-0100.
세계적인 설치 예술가 조르주 루스의 개인전도 4월 15일부터 5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프랑스비엔날레(1982), 베니스비엔날레(1988), 시드니비엔날레(1984) 참여작가로 건축 회화 사진을 연결하는 독특한 작품세계로 이름을 알렸다. 이번 전시회는 '공간 픽션 사진'을 주제로 작가의 대표작들을 전시한다. 예술의전당을 소재로 한 신작도 발표한다. (02)580-1300.
프랑스 현대미술가 디디에 망코보니의 국내 첫 개인전 '플레잉 위드 컬러스'도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갤러리에서 4월 22일까지 열린다. 다양한 색채의 수채화, 모빌, 유화, 드로잉 등 30여 점이 소개된다. (02)310-1924.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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