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GS타워 2층 로비에는 가로 3m, 세로 2.4m의 대형 보드판이 있다. 보드판을 장식하고 있는 건 하트 모양의 수 많은 스티커들. 여기에 매월 급여일마다 일정 금액의 기부를 약속한 GS칼텍스 임직원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GS칼텍스는 최근 ‘마음톡톡’으로 명명된 다소 생소한 주제의 사회공헌활동을 시작했다. 마음톡톡은 마음과 마음이 만나 서로 교감(talk)하면서 내면의 상처를 ‘톡톡’ 터뜨린다는 의미다. 대상은 학교 폭력이나 가정 학대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아이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마음 속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실제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 조사에서 초ㆍ중ㆍ고생의 30%가 정신건강 고위험군이라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GS칼텍스는 ‘예술 치료’를 어린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택했다. 음악 미술 연극 무용 시 등 예술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감성을 일깨워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주자는 취지에서다. 지난해 4월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킨 이래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관련 네트워크를 구축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GS칼텍스 관계자는 “국내 예술 치료는 10여년에 불과한 역사와 민간 자격증 남발로 인해 치료 역량이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전문성과 신뢰성이 담보된 치료사 양성 체계를 확립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마음톡톡은 통합 치료, 집단 치료를 지향한다.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새로운 치료 모델을 개발하고, 치료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 GS칼텍스 고유의 어린이 힐링 사업으로 정착시켜 나갈 계획이다.
우선 국제 아동구호단체 굿네이버스와 협약을 통해 전국에 산재한 13개 기관에서 전담 치료를 담당하도록 했다. 향후 3년 동안 어린이 1만명을 대상으로 치료가 이뤄지고, 이 기간 동안 최적의 치료법을 도출하기 위해 사후 효과성 조사도 실시된다.
전문 치료사 양성은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다. 통합예술치료 프로그램에 기반해 기존 예술 치료사들을 ‘수퍼바이저(임상감독관)’급으로 끌어 올린 뒤, 이들이 다시 지역 치료사를 교육하는 순환식 교육 체계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배병우(사진작가) 송승환(공연) 제임스 전(안무가) 등 전문 자문단과 교수진 진용도 짜여졌다.
임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는 GS칼텍스가 선례도 전무하고, 효과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어린이 힐링 사업에 선뜻 뛰어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지난해 12월17일부터 올해 1월18일까지 한 달 동안 진행된 모금 캠페인은 계획 대비 120%의 실적을 거뒀다고 한다. 3,400명의 선한 마음과 직원들의 기부금에 동일한 금액을 보탠 회사의 열정이 모여 소중한 종잣돈이 마련됐다. GS칼텍스 사회공헌 전담팀 관계자는 “회사와 임직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진정성’이 바로 마음톡톡의 필수조건”이라고 했다.
마음톡톡은 문화ㆍ예술에 특화된 GS칼텍스의 나눔 역사와 무관치 않다. 회사가 사회공헌 전담팀을 발족시킨 시기는 2005년. 45년 간 GS칼텍스 성장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전남 여수 지역이 봉사의 터전이 됐다. 이미 1996년부터 지역 인재를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51억원(7,000명)의 장학금을 지원했으나, 주민들이 정작 원한 건 제대로 된 문화예술 공간을 갖는 일이었다.
GS칼텍스는 여수 주민의 뜻에 따라 문화예술 공원 ‘예울마루’를 조성했다. 1,100억원을 들여 지난해 5월 개관한 예울마루는 여수 망마산과 장도 일대 70만㎡ 부지에 1,000석 규모의 대극장과 소극장, 기획ㆍ상설 전시장, 산책로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종합 테마 시설이다. 작년 한 해에만 84회 공연에 5만7,000여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지역의 대표 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예울마루는 사회공헌의 취지에 맞게 문화 소외계층을 보듬는 ‘객석 나눔’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다문화가정 및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3,000명을 초청해 오케스트라 연주회, 사진전 등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마음톡톡의 첫 치유 프로그램도 예울마루에서 진행된다. 다음달부터 정신적 장애를 겪는 아동들과 가족이 여수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치유전문 캠프 전문가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을 예정이다.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하는 만큼 어려움도 있겠지만, 상처받은 아이들이 미래를 꿈꾸고 밝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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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열린 GS칼텍스 어린이 힐링사업 협약식에서 허진수(앞줄 가운데) 부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마음톡톡 프로그램 출범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GS칼텍스 제공
GS칼텍스가 여수 망마산 일대에 조성한 예울마루 전경. GS칼텍스 제공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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