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이 "자신을 스스로 남다르게 만들어가는 과학자"라며 이광형(59)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추천했다.
몇 년 전 처음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연구실에 찾아갔을 때였다.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희한한 광경에 웃음이 나오다 이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도대체 저 분 왜 저러시는 걸까.' 방문 목적은 제쳐놓고 일단 궁금증부터 해결해야겠다 싶어서 대놓고 물어봤다. "교수님, 그런데 텔레비전을 왜…, 거꾸로 보십니까?"
이 교수는 물을 줄 알았다는 듯 껄껄 웃으며 시원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뇌를 자극하기 위해서"란다. 화면을 거꾸로 보다 보면 뇌가 원래의 영상을 상상하기 위해 똑바로 놓고 볼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계속 뇌를 작동시키면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곱씹어 볼수록 이 교수의 참신한 아이디어에 공감이 갔다. 그의 연구실에는 지금도 텔레비전이 거꾸로 걸려 있다.
이런 엉뚱함 덕분인지 이 교수의 활동 영역은 남다르다. 프랑스 유학생활 동안의 경험담을 담은 수필집 는 공대 교수가 쓴 책으로는 아주 드물게 베스트셀러 7위까지 올랐다. 사회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문장력과 세밀한 관찰력에 유머까지 곁들인 이 책이 인기를 모은 뒤 이 교수는 여세를 몰아 과학 대중화를 위한 책을 여러 권 썼다.
1990년대 컴퓨터과학에 생명과학을 접목시켜 보려는 시도가 한창이었을 때 이 교수는 한 발 앞서 학교에 아예 이런 융합학문을 전담하는 학과를 신설했다. 최근에는 대학원에 공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는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항상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재능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내가 아는 이 교수는 그런 사람이다.
이 교수가 그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구가 실생활에 이용될 수 있는 게 과학자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점은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실험이나 논문에 머무는 과학은 연구실 밖을 벗어나기 어렵다. 과학이 실생활에 적용되고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선 과학자 스스로 자신의 연구 외 분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이 교수의 제자들 역시 남다른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그 스승의 그 제자다. 학위과정을 마친 이공계 학생들은 대부분 연구자나 교수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이 교수의 제자들은 유독 창업에 많이 도전한다. 연구 중 얻은 아이디어를 상용화해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게 과학자의 큰 보람 중 하나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현재 이 교수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회사들 연간 매출액을 합하면 2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쉽지 않은 경제상황에서 초보 기업인들의 선전이 여간 반갑지 않다.
사실 나도 이 교수 제자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우리 연구원에서 실용위성을 개발할 때 위성 운용에 필수인 소프트웨어를 국산 기술로 만들려고 전산학 인력을 모집했다. 하지만 대기업을 비롯해 오라는 데 많은 컴퓨터 전공 학생들이 굳이 생소한 항공우주 분야를 택할 리 만무했다. 그때 이 교수가 나서서 학생들을 설득해줬다. 아마 남들과 다른 분야에서 자리를 잡으면 나중에 자신의 가치가 얼마나 커질지를 일깨워줬을 듯싶다. 그 덕에 우수한 인력을 확보했고, 아리랑위성은 소프트웨어 국산화에 성공했다.
얼마 전 이 교수에게 될 법한 아이디어를 건넸다. 먼 별에서 오는 미약한 X선을 측정해 우주환경을 분석하는 기술이 있는데, 이를 인체에 영향을 주는 극미량의 X선을 감지하는 진단기기 개발에 응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요즘 우린 이 아이디어가 의료현장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상의하고 있다. 이 교수에게 받은 도움에 대한 내 작은 보답이다.
정리=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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