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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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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점프

입력
2013.03.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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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일곱 번의 점프를 깨끗이 끝냈을 때, 휴,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는 트리플 러츠와 트리플 플립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른다. 어떨 때 ‘롱 엣지’ 판정이 나는지도 모른다. 나로서야 무사히 착지만 하면 오케이. 그 순간 아슬아슬함과 짜릿함이 교차한다.

그러니까 연아의 무대를 생방송으로 보는 동안 나는 ‘아름다운 연기’보다는 ‘고난도의 곡예’를 대하는 마음 쪽에 가깝다. 오래 전 동춘서커스단의 공연을 구경하던 때처럼 말이다. 엿가락처럼 휘는 소녀들의 몸이 층층이 쌓여 탑을 이룰 때의 경탄. 그네 타는 곡예사가 공중회전을 할 때의 아찔함.

곡예는 미감에 봉사하지 않는다. 곡예는 위태로움을 날것 그대로 전시하는 정직한 스릴의 장르다. 영화의 스릴에 대역과 카메라 조작 같은 트릭이 개입하는 것과 달리, 곡예사는 추락과 전복의 진짜 위험 속으로 맨몸을 밀어 넣는다. 그가 실패할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곡예사가 우리 앞에 펼쳐 보이는 건 단지 신출한 묘기만이 아니다. 그는 1초 후의 시간조차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무력함도 동시에 보여준다. 곡예의 스릴은 그렇게 단 한 번으로 끝난다.

TV에서는 연아의 무대를 녹화한 영상을 거푸 틀어주고 있다. 스릴은 휘발되고, 그제야 아슬아슬한 곡예 대신 우아한 연기가 눈에 들어온다. 1초 후의 시간에 대한 불안과 무능력 속에 곡예의 숭고함이 있다면, 시간이 장악되었다는 안도감 속에서 예술의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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