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육미를 그리워하는 글만 봐도 눈물이 쏟아져 차마 클릭을 못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게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짓이었다고 하니, 지금도 진정이 안 됩니다."
최근 인사동 먹자골목 화재사건(2월 17일)의 방화범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육미집' 주인 김진태(59)씨는 그날 술로 밤을 지샜다. 범인이 육미에서 술을 마시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도저히 맨 정신으로 집에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종로 일대의 대표적인 선술집이던 육미가 화마에 자취를 감춘 지 한 달. 15일 화재현장에서 김씨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육미집이란 단어를 꺼낼 때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 시기에 그는 충남 서산에서 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고 상경해 웨이터, 리어카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리고 22년간 쪽 잠을 자며 겨우 일궈낸 육미집을 정신질환자가 잿더미로 만들었다니 술을 친구 삼아 마음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저렴한 안주와 넉넉한 인심으로 한결같이 사랑 받던 육미집이었지만 불이 난 뒤 당장 수입이 끊긴 탓에 함께 육미를 운영하던 부인 이은주(48)씨는 최근 월 170만원을 받는 파출부 일을 시작했다. 열댓 명의 다른 종업원들 역시 대부분 다른 식당 일을 찾아 떠났고 20년 전부터 함께 일해 온 종업원 2명만 '육미집을 떠날 수 없다'며 김씨의 곁을 지키고 있는 상태다.
하루도 육미집을 다시 일으켜 재기하는 꿈을 꾸지 않는 날이 없는 김씨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사동 먹자골목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묶여 있는데다 소실된 건물 4동 모두 당시 불법 증축된 탓에 이전 규모로 재건축할 수 없다는 게 종로구청 측 입장이다. 더군다나 육미집을 포함한 인근 피해건물들이 워낙 노후해 화재보험 보상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씨를 포함한 상인들은 '인사동화재 피해상인 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에 '재난지역' 선포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김씨는 "여기 상인들 모두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양반들인데 어떻게 기반을 마련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늦은 점심을 들러 가는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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