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3주가 되고도 정부 구성을 못했던 박근혜 정부가 15일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소위 4대 권력기관장을 포함한 외청장 인사를 하면서 일단 주요 인사는 마무리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기획재정부, 국방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박 대통령이 강행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3주가 아니라 대통령 당선 후부터 따지면 3개월이 되도록 새정부는 삐걱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인사였다. 평생 존경받는 법관이었다가 새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가 된 이는 과다한 재산이 드러나면서 자진사퇴 형식으로 낙마했다. 대통령이 야심차게 신설했다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첫 장관 후보자가 된 재미동포는, 진짜 사퇴 이유가 뭐였든, 검증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는 “조국에 대한 헌신을 접겠다”는 가당찮은 말을 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버렸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과연 청문회가 무슨 필요 있나 하는 회의가 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고위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이 신상 검증은 비공개해야 한다고 말했을까만 청문회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 문제는 국회와 언론의 검증과정에서 갖가지 문제가 드러난 사람들이 망신은 망신대로 당하다가 어떻게 됐든 청문회만 통과하면 장관이나 막강한 권력기관의 장으로 또한번 화려하게 전신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역대 정부의 청문회를 거치면서 자녀 진학 등을 이유로 한 위장전입은 아예 애교로 봐줘야 할 정도로 거의 모든 후보자들의 꼬리표가 됐고, 부동산 투기나 재산 형성과정의 의혹은 그 사람이 오히려 재테크에도 밝다는 반증처럼 돼버렸다. 자녀들에게 불법 증여를 하고 세금을 포탈하거나 체납하고도 “잘 몰랐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이들을 보면, 몇만원짜리 과태료 통지서만 집에 날아와도 화들짝 놀라는 보통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데도 이들은 청문회만 지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바꾸고 권력을 휘두른다. 청문회는 문자 그대로 통과의례일 뿐이다.
대부분 후보자들의 흠집은 이렇게 판에 박은 듯했지만, 이번 청문회에서는 유별나게 두드러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바로 전관예우 문제다. 검사 출신인 국무총리와 법무부장관은 로펌에서 월 3,000만~1억원의 고액 급여를 받았고, 국방부장관 후보자는 무기중개업체 고문으로 있었으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대형 로펌들에서 대기업을 대리해 소송을 했던 사람이다. 판ㆍ검사는 물론 경제관료ㆍ군 출신이 퇴직 후 거액을 받고 로펌이나 기업ㆍ무기중개업체 등으로 가서 일하다가 다시 공직으로 복귀하는 현상을 그냥 놔둬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전관예우에서 한 발 더 나가 이제는 전관이 다시 공직으로 돌아가는 경우까지 대비해 예우해야 한다는 쌍관예우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전관예우 내지 쌍관예우는 공직의 수행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공직에 있던 자들이 그 자리로 인해 얻었던 경험과 인맥을 퇴직 후 특정 업체나 조직에서 사익을 위해 쓰다가, 또다시 공직으로 돌아와서는 그 업체나 조직을 위해 공익을 버릴 수도 있다는 악순환인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 해먹던 놈이 또 해먹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새 정부의 첫 인사에서 전관예우가 문제가 된 것은 그래서 특히 우려스럽다. 청문회는 통과했을지 몰라도 그 과정은 잊지 말기 바란다.
전관예우는 원래 판ㆍ검사로 있다가 변호사로 갓 개업한 사람이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는 법조계 내부의 특혜를 가리키던, 제한적인 의미의 용어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한국사회 권력과 돈이 있는 곳에는 보편적인 현상이 돼버렸다는 것이 이번 인사로 증명된 셈이다. 외국에는 이런 의미를 가진 말 자체가 없다. 한 법조계 원로가 스위스를 방문해 한국 법조계가 전관예우 때문에 골치라는 이야기를 하려 했더니, 그런 말 자체도 없고 도저히 이해를 못해 설명을 할 수가 없더라는 일화도 있다. 혹시 해서 위키피디아를 찾아봤더니 전관예우는 아예 ‘Jeon-gwan ye-u’로, 우리말 발음 그대로가 항목으로 올라 있었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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