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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옛 풍경들에 대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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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옛 풍경들에 대한 그리움

입력
2013.03.1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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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무릎, 솟대와 장승, 술찌끼, 깨금발 싸움, 똬리, 불쏘시개….

한국인 삶의 궤적을 조명해 온 김열규(81) 서강대 명예교수가 우리가 잊고 사는 그리운 대상들을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 낸다. 김 교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애달픔에 젖는 것'에 대해 '어머니의 품과도 같고,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것, 그래서 한시라도 잊지 못하는 것'들을 책에 옮겨 놓았다. 60권쯤 책을 낸 저자에게도 이 책은 애틋한 듯하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노(老)학자의 따뜻한 시선과 잔잔한 글들이 마음을 덥혀 준다.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생소한 '고샅길'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이로 구부정하게 나 있는 비좁은 골목길을 말한다. 비껴 나 있듯이 굽이져서 돌아가는 골목길은 아이들이 "개똥아"하며 동무를 찾고, 엄마들이 집으로 이어지는 길에 이집, 저집 참견하다 종래엔 샛길로 빠지고 말게 되는 이웃사촌들의 정이 담뿍한 거리다.

마을신을 모신 작은 당집인 서낭당도 사라져가는 것들 중 하나다. 제를 모시고 난 다음 농악대가 온 마을을 몰아치면서 집집마다 "재앙 물러가라! 복이여 깃들라!"하고 빌면 코흘리개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나름의 신명을 표현하던 옛 풍경은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체할 때면 약보다 먼저 할머니를 찾아 배를 까고 누워 "할미 손은 약손"하며 배를 쓸어 내리기만을 기다리던 추억, '술찌끼'라고 불리는 재강을 쌀과 함께 끓여낸 달짝지근한 재강죽의 맛,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질근질근 씹어 먹었던 칡뿌리의 쌉쌀한 기억이 책장을 넘기며 새록새록 돋아난다. 동네를 돌며 찌그러진 양푼이나 으깨진 양철 그릇 따위와 엿을 바꿔주는 엿장사의 추억도 재미나다. 예전 아이들에게 최고의 간식이었는데 이제는 시장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나가 뛰어 놀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깨끔발뛰기, 닭싸움, 팽이치기 등을 다시 한번 가르치기도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의 아련한 추억을 엿볼 수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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