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가족사 그린 자전적 소설누추한 현실의 탁월한 시적 묘사'호랑이처럼 와 고양이처럼 가는 삶'
이것은 사내들의 소설이다. 주제는 묵직하고, 어조는 진중하다. 문장은 박력 있고, 서사는 활주한다. '아버지를 위한 레퀴엠'이라는 부제처럼, 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내들은 이렇게 늙어간다'(95쪽)는 고독과 슬픔이다.
25년차 시인 원재훈(52)의 첫 소설 를 새로운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스타일을 다소 폭력적으로 낡은 것과 새로운 것, 두 가지로만 나눈다면 이 소설은 어쩔 수 없이 전자에 속한다. 전형적 인물들과 전통적 서술법, 불교적 세계관이 깊게 밴 주제의식에 이르기까지, 새롭다 이를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도 쭈뼛대거나 두리번거리지 않고 우직하게 제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이 소설은 마침내 독자의 선입견을 기쁘게 배반한다. 그 배반의 핵심 동력은 아마도 현실의 가장 누추하고 흔해빠진 장면을 그릴 때조차 시적 응시로 일관하는 서술자의 '시인 됨'에서 나올 것이다.
소설은 화장한 아버지의 몸 속에서 나온 쇠막대라는 작가의 자전적 체험에서 잉태됐다. 화장을 마친 아버지의 유골 사이로 가족 중 누구도 몰랐던 일곱 개의 쇳조각이 나온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인민군과 교전 중 다리 골절을 입었고, 그것들은 그 골절된 뼈를 이어준 의료용 쇠막대였다. 작가에게 그것은 '말굽에 박아 넣은 편자'로 보였다. '사시는 동안 참 무거운 것을 몸 속에 지니고도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노새처럼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책머리에')
소설은 중년의 가난한 시인 상원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부유한 기업가 아버지를 버리고 자발적으로 그의 비루한 가난 속으로 걸어 들어온 아내는 지긋지긋한 가난의 한복판에서 돈벌이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 '당신은 돈에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시만 쓰면 된다'는 게 이유. 장인의 투자로 커피숍을 시작한 아내는 사업 수완을 발휘해 청담동에 고급 식당을 내고 일산에 저택도 마련한다. '나'의 드림카였던 랭글러 루비콘도 선물한다.
하지만 '나의 가난한 시절을 달려온 위대한 바퀴'였던 낡은 중고차를 폐차했을 때, '나'는 고독해졌다. '내 인생의 어떤 세월이 폐기 처분되어버린 느낌 때문'이다. 아내는 더 이상 시를 읽지 않고, 관 속 같은 골방에 낙엽처럼 웅크리고 있다 조용히 숨을 거둔 팔순의 아버지는 일곱 개의 쇳조각만을 남기고 한 줌 분말이 되어버린다. '나'는 불현듯 출가한다.
인물들은 모두 처연한 고독 속에 놓여있다. 가난과 모멸 속에서 노새 같은 삶을 살았던 아버지, 아버지의 두 집 살림으로 가슴 속에 굵은 옹이가 진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은 작은 어머니와 어미 잃고 아버지만을 기다리는 작고 불쌍한 배 다른 동생 상민…. 모두 뒤엉킨 인연의 실타래와 저마다의 업(業)을 벗지 못해 홀로 울고 있는 인물들이다. 겹치고 어긋나는 이들의 장구한 세월과 그 고독의 역사를 어루만지는 작가의 순정한 시선은 물리적 시공간을 와해하며 개성으로, 산 속 토굴로, 저 먼 식민지의 과거로, 죽음 이후의 미래로 내뻗으며 마침내 독자의 심금에 가 닿는다.
작가는 책머리에서 망치를 '한 인간이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쇠막대를 담금질했던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삶은 누구에게나 '호랑이처럼 다가와 고양이처럼 사라진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내들만의 소설은 아니다. 작가세계가 새롭게 시작하는 소설시리즈의 첫 작품. 다만 독서의 가속도를 방해하는 견딜 수 없이 불성실한 교열은 지적해 둬야겠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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