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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날다, 김혜민 입단 15년 만에 여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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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날다, 김혜민 입단 15년 만에 여류국수

입력
2013.03.1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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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입단 15년차를 맞는 중견 여자기사 김혜민(27)이 생애 첫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김혜민은 12일 한국기원 본선대국실에서 벌어진 제18기 가그린배 프로여류국수전 결승 3번기 제2국에서 박지연(22)에게 불계승, 지난 달 19일 열린 결승 1국 승리에 이어 종합전적 2대0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김혜민은 "결승전을 대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고 그동안 하도 (박지연에게)많이 져서 크게 기대를 않고 별 부담 없이 뒀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요즘은 워낙 잘 두는 후배들이 많기 때문에 꼭 이기려는 생각보다 그저 한 판 한 판 부끄럽지 않은 바둑을 두고 싶을 뿐"이라고 우승 소감을 말했다.

김혜민의 별명은 거북이다. 초등 4학년 때 바둑교실에서 처음 만나 알게 된 후 지금까지 17년간 함께 승부사의 길을 걸어오면서 단짝 친구로 지내고 있는 '(이)민진 언니'(29)가 지어줬다. 자그마한 체구에 커다란 배낭을 둘러멘 모습이 당시 유행하던 만화 캐릭터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지만 '항상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차분히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꾸준히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착한 거북이' 김혜민의 평소 이미지와도 겹친다.

김혜민은 1986년생으로 1999년 10월에 입단했다. 2007년 제1회 대리배 세계여자바둑대회에서 준우승한 것을 비롯, 그동안 국내외 기전에서 준우승만 네 차례 했을 뿐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다 드디어 입단 13년 5개월 만에 첫 우승의 꿈을 이뤘다. 지난해 명지대 바둑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원에 진학한 김혜민은 이번 우승으로 가산점 200점을 받아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춰 완성에 이른다'는 구체(具體ㆍ7단의 별칭)로 승단했다. 박지은, 조혜연(이상 9단)과 이민진(7단)에 이어 국내 여자기사 중 네 번째 최고단자다.

"구체적으로 뭐라 표현하긴 어렵지만 무척 기쁜 건 사실이에요. '드디어 해냈구나'라는 뿌듯한 느낌도 들고. 먼저 부모님께 감사 드리고 저를 프로의 길로 이끌어 주신 스승 김원 사범님과 그동안 함께 공부한 무여회 동료들에게 특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김혜민은 여자기사들의 바둑연구모임인 무여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무여회는 2010년 3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여자상비군이 구성된 것을 계기로 "우리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바둑공부 한 번 해보자"는 취지에서 '무서운 여자들'이 함께 뭉쳐 결성했다. 정관장 스타 이민진(29)을 비롯해 김혜민, 박지연과 박소현(25) 김윤영(24) 문도원(22) 김혜림(21)이 창립 멤버고 지난해부터 김나현(22) 이영주(23)가 합류했다. 이민진이 지난해 결혼하면서 김혜민이 회장직을 넘겨받았다.

본격적인 바둑공부모임 답게 무여회원들의 일과는 연구생 시절 못지않게 매우 빡빡하다. 시합이나 다른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한 반드시 매일 오전 10시에 한국기원 4층 여자기사실로 출근해 저녁 5시까지 바둑공부를 해야 한다. 오전에는 주로 국내외 유명기사들의 실전기보를 연구하고 오후에는 연습 대국과 복기, 사활공부를 주로 한다. 사활문제 성적 우수자에게는 작은 시상도 한다. 가끔씩 정상급 남자기사를 특별 강사로 초빙해 원포인트 레슨을 받기도 한다. 그게 벌써 3년째 계속되고 있으니 대단한 끈기다. 그러다 보니 김윤영, 박지연에 이어 김혜민까지 잇달아 정상을 밟아 어느덧 국내 여자바둑계 최대, 최강의 연구모임으로 자리잡았다.

국내 여자바둑계는 10년 넘게 독재권력을 휘둘러왔던 루이나이웨이가 2011년 말 중국으로 돌아간 뒤 절대강자가 없는 군웅할거시대를 맞았다. 루이와 함께 여자바둑계를 석권했던 박지은(30) 조혜연(28)이 차츰 노쇠현상을 보이면서 젊은 신예들이 새로운 강자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모든 여자기전 타이틀매치가 루이-박지은-조혜연의 독무대였지만 요즘은 전혀 양상이 다르다. 지난해 열린 최정-김미리의 여류명인전 도전기를 시작으로 박지연-박지은의 여류국수전, 조혜연-김혜민의 여류십단전 결승전에 이어 올해 열린 최정-박지연의 여류명인전, 김혜민-박지연의 여류국수전 결승전까지 모든 타이틀매치의 조합이 다르고 우승자의 얼굴도 계속 바뀌고 있다. 그만큼 여자바둑계의 선두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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