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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는 불평등 고용 노동자, 비천했지만 인생역전도 있었다

입력
2013.03.1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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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인구의 30% 차지… 태종 때 불정은 부자 반열반석평은 공직까지 올라노비 열여덟명의 삶 통해 조선의 또 다른 면모 조명

몇 해 전 방송된 KBS 드라마 '추노'는 조선시대를 새로운 눈으로 재해석한 팩션형 드라마다. 훈련원 판관으로 소현세자의 측근이던 태하(오지호 분)는 세자의 죽음과 함께 노비로 추락했다가 기회를 틈타 도주한다. 이야기는 추노꾼인 대길(장혁 분)이 거액의 약속을 받고 그를 잡으러 떠나고, 얼마 안가 이 둘이 친구가 되면서 시작된다. 대길이 태하를 애증 섞인 말투로 "어이! 노비"라고 부를 때, 태하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에 매어 있는 것들은 다 노비야."

등을 집필해온 저자는 신간 에서 태하의 이 말이 조선시대 "노비의 본질"(23쪽)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전체 인구에서 최소 30퍼센트 이상이 노비 신분"이었으며 "노비가 그 시대의 일반인이었다"(7쪽)라고 소개한다. 스스로 생계를 해결한 양인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자영업자에 가깝다면, 노비는 고용 노동자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고로 노비를 알아야, 조선시대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의 노동자가 다종다양하듯, 노비 역시 마찬가지다. 단, 태하의 말처럼, 노비는 주인에게 매어있다. 주인과 노비 관계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처럼 (이론상으로나마)동등하지 않고 '하늘과 땅'만큼이나 격차가 났다는 것, 이 신분이 아버지에서 자식으로 이어졌다는 것 등이 다른 점이다. 책은 조선시대 노비 열여덟 명의 삶을 소개하고 노비의 개념, 기원, 결혼, 사회적 지위, 재산 등 제도를 친절하게 소개한다.

노비는 크게 세가지 경로를 통해 '공급'됐다. 전쟁에서 붙잡힌 포로, 중범죄를 지은 죄인,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그 대상이었다.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한번 노비가 되면 신분은 대를 이어가며 지속됐다. 대개 주인집에 공물을 바치거나 부역을 했는데, 주인과 함께 살며 이 의무를 수행한 노비를 솔거노비, 따로 살며 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노비를 외거노비라 불렀다. 관청에 속한 관노비, 개인이 주인인 사노비로 나뉜다.

드물지만, 학문이 깊어 선비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노비 박인수, 재산으로 한성 최고의 기생 '성산월'을 차지한 이름 모를 공노비 같은 사례도 있었다. 이를 통해 공물을 주인에게 바치거나 부역하면, 노비도 공부할 수 있고, 사유재산을 가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일부 노비들 중에는 재산을 축적하여 부자의 반열에 올라선 이들이 있었다. 조선 태종 대에 의흥삼군부의 좌군에 속한 공노비였던 불정은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부자 노비'였다.

반석평은 그 총기를 알아본 그의 주인이 후대가 없는 부잣집에 양자를 들여보냈다. 오늘날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 지중추부사까지 지낸 반석평은 훗날 자신의 신분을 조정에 밝혔지만, 공직이 박탈되지 않고 그의 주인이 공직에 천거된 행운까지 쥐었다. 노비가 재산으로 기생은 살 수 있어도 과거시험을 볼 수는 없었던 셈이다. 노비와 달리 주인과 계약에 의해 일정기간 노동력을 파는 '머슴'의 경우 과거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운 좋은 사례도 있지만, 노비의 본질은 주인에게 구속돼있다는 점이다. 사노비의 경우 주인의 재산으로 간주돼 기본적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등에 실린 투기심하고 엽기적인 주인에게 손가락이 잘린 여종, 술주정하다 주인에게 맞아 죽은 노비 등은 이 시대 노비의 삶이 얼마나 비천한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렇게 다양한 노비들의 삶과 제도를 복원하며 조선시대 또다른 면모를 들려준다. 풍부와 사료에 저자의 찰진 입담이 더해져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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