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개발사업 채무불이행(디폴트)의 불똥이 국민연금공단으로 튀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이번 사업에 투자한 1,250억원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하면서 '안전성이 최우선'이라는 국민연금의 존재가치를 저버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금리 기조 속에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위험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디폴트에 빠진 용산개발사업 시행사 드림허브에 KB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을 통해 총 1,250억원을 투자했다. 업계에선 부동산경기 침체로 파산 가능성이 농후해 투자금 전액을 날릴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2008년 투자 당시에는 부동산경기가 괜찮아 수조원대 수익이 예상됐었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웅진그룹에도 1,804억원을 직ㆍ간접적으로 투자해 상당 부분 손실이 예상된다. 감사원은 올해 초 발표한 '기금 운용실태 점검결과'에서 국민연금이 지난해 부적절한 투자로 2,420억원의 투자 손실을 내는 등 총체적 부실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운용손실은 국민연금 규모가 세계 3번째(2월 400조원 돌파)로 커진데다, 저금리와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수익률 만회를 위해 투자범위 확대를 요구 받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을 납부할 인구가 매년 줄어 2060년이면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추산된다"며 "연금 고갈을 늦추려면 수익률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험한 투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 정부 들어 국민연금의 투자 리스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대선 공약인 기초연금 확대에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국민연금이 투자한 주식 의결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까지 받고 있다. 최근에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숨통을 틔워준다며 신용등급이 낮은 중기 비(非)량 채권에 의무적으로 투자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보장이라는 본래 목적에 부합하도록 독립성을 보장해줘야 한다"며 "용산 디폴트 사태처럼 하나의 사업이 실패했다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수익률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드럼허브 1대 주주인 코레일은 용산개발사업 정상화를 위해 연말까지 2,600억원을 지원하는 대신 랜드마크빌딩 시공권 반납 등 민간 출자사들의 양보를 요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만일 민간 출자사들이 응하지 않으면 코레일은 파산 절차를 밟기로 했다.
코레일은 이날 출자사 긴급모임을 갖고 ▦건설투자자의 시공권 포기 ▦새 사업협약서로 전면 개정을 뼈대로 한 정상화 방안을 공개했다. 정창영 코레일 사장은 "디폴트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은 전환사채(CB) 2,500억원 발행에 민간 출자사들이 참여하지 않은 탓"이라며 삼성물산이 보유 중인 1조4,000억원 규모 랜드마크빌딩 시공권 등 출자사들의 기득권 포기를 요구했다. 대신 코레일은 삼성물산이 사들인 CB 688억원을 인수하기로 했다.
코레일은 21일까지 민간 출자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합의서를 작성해 4월 1일 이사회를 개최한다. 합의서가 승인되면 코레일은 연말까지 단기자금 2,600억원을 지원하고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2조4,000억원을 상환할 계획이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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