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바람끝이 순한 날 창경궁을 찾았다.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 뒷마루에 앉아 뒤란의 석대를 바라보았다. 똑같은 크기의 돌을 쌓지 않고 서로 다른 돌을 교묘하게 맞물려 쌓은 모습이 아름다워 한참을 넋을 놓고 보았다. 같은 크기의 돌을 같은 간격과 높이로 쌓았다면 참 지루하고 단조로웠을 텐데 마치 멋대로 쌓은 듯한 돌들이 어찌 그리 서로 제 너비와 높이에 맞춰 어울려있는지!
그저 제 입맛에만 맞는 이를 골라도 어찌 저리 고를까 싶은 인물들로 새로운 정부의 첫 내각을 채우나 싶어 답답했다. 그저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우리 자신이 불쌍할 뿐이다. 사람을 고르는 것은 그 권한을 가진 사람의 권리이겠고, 사실 사람보다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 부서의 장관은 그 상징적 의미만으로도 가벼운 자리가 결코 아니다. 아마도 그 임명권자의 야당 시절이었다면 그 중 절반은 낙마하고도 남았을 사람들을 보면서 그이의 '유일한' 덕목인 약속 이행이나 일관성조차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종북이라고 북을 치던 자들이 이제는 낸시랭조차 종북이라고 종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 봄은 아직도 멀었다 싶은 게 비단 나만의 느낌일까? 심지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인간의 질이 낮은 사람'들이 종북세력이라고 아주 당당히 말하는 품새를 보면 아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국가정보원의 강연에서 그랬단다. 도대체 그는 무슨 근거로 인간의 질을 평가할 수 있으며 무엇을 현명한 판단이라 하는지 묻고 싶다. 이쯤이면 아예 모두 칼 든 망나니 춤추는 꼴이다. 도무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이들이 설치는 건 똑같은 돌을 나란히 세워 축대를 쌓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 때문이다. 다른 모양과 크기의 돌은 아예 돌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쌓은 축대는 숨 막힐 뿐 아니라 좋은 돌마저 돌로 여기지 않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사실 똑같은 돌 나란히 쌓은 성이나 축대는 조금만 충격이 가해져도 무너진다. 하지만 다양한 돌로 쌓은 것은 서로 그 충격을 비선형적으로 나누기 때문에 잘 버텨낸다.
교과서에 분명하게 '군사정변'이라고 명시된 군사쿠데타에 대해서조차 말할 수 없다거나, 그것을 판단할 지식이 모자란다는 따위의 말을 태연하게 뱉어내는 이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간의 질이 높은' 사람들인가? 호부호형을 못해 집 떠나는 홍길동의 용기조차 그들에게 찾을 수 없다. 중학교 시절 10월유신이라는 변종 쿠데타 때 광화문 앞의 장갑차를 보며 덜덜 떨고, 대학 시절은 강제로 두 차례나 휴교되는 시절을 겪으며 분노했던 나는 현명한 판단도 할 수 없는, 질 낮은 인간이 되는 것일까? 그런 자의적 판단과 횡포는 유신헌법의 자의성과 무늬만 다를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낡은 군복 입고 설치며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모조리 빨갱이 운운하는 이 무례함을 보면서 유신시절의 데자뷰(기시감)를 느끼는 것은 자라 본 내가 솥뚜껑 보며 놀라는 과민함 때문일까? 그러나 이미 과다노출을 단속하겠단다.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의 기시감이 과민일까?
정치적 입장과 판단을 떠나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진실에 대한 용기가 없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참 길고 모진 겨울이었다. 그래도 바람끝이 순해지는 걸 보면 봄이 왔다. 그런데 봄 같지 않다. 전한(前漢) 말기 흉노의 선우에게 정략결혼으로 시집간 왕소군의 심정을 대신해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춘래불사춘이라 노래한 것처럼, 시간으로는 봄이지만, 도무지 봄 같지 않으니 안타깝다.
똑같은 크기와 너비의 돌이 아니라 여러 모양의 돌을 쌓은 통명전 뒤뜰의 축대를 보면서 진짜 봄을 맞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힘과 아름다움은 그렇게 어울리며 생긴다. 통합과 소통은 그런 것이다. 다양함의 질서와 조화, 그게 진짜 힘이다. 그 뒷마루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나는 '친북좌파'(親Book座派)라고 내몰려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기어코 봄은 오게 마련이다. 그게 자연의 질서이다. 사람 노릇 제대로 하라고 그 자연이 가르친다. 통명전 뒤뜰에 봄바람이 슬그머니 가득하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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