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65더 70XX. 신민자(42ㆍ서울 광진구ㆍ여)씨가 12년 만에 강원 고성군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자신의 그랜저XG 차량 번호판이다. 주인은 처음 봤지만 일명 대포차로 전국을 떠돌아 그 동안 이 차를 거쳐간 사람은 10명 가까이 된다. 신씨가 자신 명의의 차를 찾아 내는데 걸린 12년 세월 속에는 대포차의 폐해와 불법 유통되는 까닭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건 2001년 4월. 친한 언니 소개로 알게 된 남성이 차를 추가로 구입할 때 "3개월만 명의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1가구 2차량이라 세금이 중과된다는 이유를 댔다. 신씨는 이에 인감과 위임장을 건넸고 이 남성은 신씨 이름으로 캐피털업체를 통해 승용차를 샀지만 약속과 달리 명의를 이전하지 않았다.
신씨는 이듬해 5월 이 남성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사건으로 수감돼 있던 그는 "나도 사기를 당했다. 나가면 꼭 갚겠다"고 울며 사정하자 신씨는 고소를 취하했다. 뼈 아픈 두 번째 실수다.
2년 후 출감한 남성은 안면을 바꿨고 연락마저 끊겼다. 신씨 차는 사라졌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재 고소는 불가능했다. 도난 시점과 장소를 명시할 수 없어 도난신고도 안 됐고, 폐차나 사고 등 사유 발생 1개월 이내에 증명서를 첨부해서 신청하는 말소등록 역시 할 수 없었다.
할부금과 자동차세 등 각종 세금은 계속 쌓였다. 과속이나 신호위반 범칙금과 과태료 고지서는 한 달에 많게는 10장 넘게 날아왔다. 처음 5년간 누적된 금액만 1억원에 육박한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된 신씨는 2006년 10월 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지만 세금은 없어지지 않았다. 차가 존재해 캐피털 할부금 역시 그대로 남았다. 수백 번 찾아간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서에서는 "우선 밀린 세금을 갚아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희귀 난치병인 루프스병이 발병한 신씨는 2010년 말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어렵게 도난 신고에 성공했다. 물론 허위 신고다. 신씨 사정을 딱하게 여긴 경찰은 "즉결심판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차는 2년이 흐른 지난해 말 고성에서 발견됐다. 달려간 신씨에게 차를 타던 남성은 "170만원을 주고 샀으니 돈을 주고 가져가라"고 했다. 신씨는 소유권이전등록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14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신씨 손을 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신씨는 자신의 차를 거쳐간 약 10명이 각각 자기 명의로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황당한 사실도 발견했다. 보험회사측은 법 상 차량소유자와 보험가입자가 동일한 지 확인해야 하지만 이를 전혀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교통사고도 몇 차례 났지만 차 명의자인 신씨에게는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신씨는 "내 실수로 대포차가 생긴 것은 인정해도 내 차를 허위 신고가 아니면 찾지 못하고, 차주가 아닌데도 보험에 드는 건 정말 불합리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신씨 이외에도 대포차 피해자들은 부지기수로 늘고 있지만 당국이 내놓는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최대 100만대, 최소 1만8,000대로 추산되는 대포차 근절책도 번호판 영치 수준에 머문다. 체납세금을 낼 때까지 차량 번호판을 압수해 운행을 못하게 하는 조치다. 대포차를 굴리던 입장에서는 버리면 그만이다. 밀린 세금은 여전히 대포차의 원 소유주 몫이다. 대포차들의 보험가입 실태에 대해서는 이제서야 조사가 시작됐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어떻게 대포차가 거래되고 보험에 가입하는지 유통경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올 상반기 안에 자동차보험회사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ㆍ사진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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