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인 200여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크메르루주 전범 4명 중 한 명이 결국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채 숨졌다. 크메르루주 전범들에 대한 단죄가 가능할지에 대한 일각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킬링필드’ 학살을 주도했던 이엥 사리(87) 당시 외무장관이 14일 숨졌다고 확인했다.
BBC방송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크메르루주 정권의 2인자인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 이엥 티리트 전 내무장관과 함께 핵심 전범 4인방으로 지목돼 2011년부터 재판을 받아왔다. 크메르루주 정권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한 캄보디아 지식인들을 회유, 국내로 돌아오도록 한 다음 고문하고 처형한 장본인이다.
그 동안 그가 고령인데다 혈압 심장 신장 등의 문제로 수 차례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 최종 판결 전에 숨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사왔다. 그의 부인인 이엥 티리트도 노인성 치매 등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석방된 상태여서 이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둘밖에 남지 않았다.
1998년 숨진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주 정권은 1975∼79년 집권기간 중 200만명에 달하는 지식인과 반대파를 처형하는 ‘피의 숙청’을 자행했지만 30년 넘게 제대로 된 재판조차 열리지 못했다.
유엔의 끈질긴 압력으로 2006년 전범재판소가 설치됐는데도 학살의 주범들은 재판에서 “학살은 꾸며낸 이야기”라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은 그 동안 직원들의 파업이나 예산 부족으로 심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을 빚어왔다. 재판 과정도 더뎠다. 따라서 전범들이 정말로 처벌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돼왔다.
지금까지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은 전범은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투올 슬렝(일명 S-21) 교도소장으로 1만5,000명을 고문, 처형한 카잉 구엑 에아브 뿐이다.
전범재판소 대변인 라스 올슨은 “이엥 사리에 대한 법적 절차를 완수하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며 “남아있는 2명에 대한 재판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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