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다치거나 손상되면 스스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재생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몇몇 조직만은 예외다. 재생능력이 없는 조직은 한번 망가지기 시작하면 회복이 어렵다. 이렇게 재생이 불가능한 부위 중 하나가 디스크 내부다. 허리나 목에 한번 문제가 생기면 계속해서 골칫거리가 되는 이유가 결국 이 때문이다.
고령화와 휴대용 전자기기 사용 증가 등 여러 환경 변화로 디스크 관련 병이 점점 늘면서 늦기 전에 일찌감치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환자도 많아지고 있다. 손상 부위가 아직 디스크 내부에 머물러 있는 초기 증상의 경우 수술은 물론 약도 쓰지 않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바로 '수핵성형술'이다.
보호막 망가지면 새어나가
디스크(추간판)는 말 그대로 척추뼈 사이를 이어주는 둥근 모양의 구조물이다. 가운데에는 물과 단백질로 이뤄진 수핵(속질핵)이 차 있고, 이를 섬유륜(섬유테)이 둘러싸고 있다. 물풍선을 연상하면 쉽다. 물이 수핵, 풍선이 섬유륜이다. 일반적인 조직은 혈관과 연결돼 있어 영양분을 공급받지만, 디스크에선 혈관이 섬유륜에만 분포한다. 외부에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하는 수핵을 섬유륜이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외상을 입거나, 오랫동안 앉아서 일하거나, 무거운 걸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는 등 척추에 무리가 가는 상황이 지속되면 섬유륜이 찢어지거나 갈라지는 균열이 생긴다. 그러면 그 틈을 통해 수핵의 수분이 빠져 나오기 시작한다(추간판내장증). 혈관과 단절돼 있는 수핵은 이렇게 한번 탈수되면 물이 다시 들어갈 방법이 없다. 균열 부위가 작을 때는 섬유륜과 주변 혈관에서 공급되는 영양물질로 어느 정도까진 복원이 되기도 하지만, 그대로 두면 균열은 계속 커지게 마련이다.
물이 빠져나갈수록 수핵은 점점 푸석푸석하고 건조해지며 탄력을 잃게 된다. 균열이 더 커지면 물 말고 단백질 같은 구성성분까지 빠져나가 버린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아예 섬유륜 자체가 터지거나 비정상적으로 밀려나오는 추간판탈출증(흔히 디스크라고 불리는 척추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핵 성분이 점점 빠져나가 디스크의 높이가 낮아지면 관절이나 인대 등 척추뼈 주변 조직이 주저앉게 되고, 이런 부위가 두꺼워지면 척추관협착증이 생기기도 한다.
초기 섬유륜 손상에 적합
섬유륜에 생긴 균열이 작고 아직 디스크 내부에 머물러 있는 경우 시도할 수 있는 치료가 수핵성형술이다. 쉽게 말해 디스크 내부를 더 이상 손상이 진행되지 않도록 직접 정리해주는 것이다.
먼저 지름 2mm 정도 되는 가느다란 주사바늘을 옆구리 쪽 허리로 찔러 넣어 디스크 안으로 진입시킨다. 디스크 내부의 손상 부위에 도달하면 바늘 안쪽으로 고주파 열을 내는 기구를 삽입한다. 그리고 바늘 끝부분을 몸 밖에서 조절하면서 찢어진 곳은 더 찢어지지 않도록 굳혀 안정화시키고, 이미 망가진 곳은 태워버린다. 이렇게 태워낸 손상 조직은 그대로 두면 몸에서 자연스럽게 흡수 처리된다.
수핵성형술에 쓰이는 고주파 열은 온도로 치면 100도가 넘는다. 철사를 물에 댔을 때 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날 정도로 달군 상태와 비슷하다. 동탄시티병원 신재흥 병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디스크 섬유륜 손상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라며 "부피가 상대적으로 작은 목 디스크를 수핵성형술로 치료했을 때 허리보다 환자의 예후가 조금 더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신경성형술과의 차이
척추질환의 비수술 치료법으로 최근 널리 알려진 신경성형술이나 신경차단술과 수핵성형술이 뭐가 다른지 궁금해하는 환자도 많다. 신경성형술이나 신경차단술은 엄밀히 말해 디스크 밖에 있는 신경과 디스크 주변을 바로잡아주는 치료다. 눌리거나 염증이 생겨 통증을 일으키는 디스크나 신경 주변으로 가느다란 관을 넣어 눌린 부분을 풀어주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을 주입하는 식이다. 이와 달리 수핵성형술은 디스크 내부로 직접 바늘을 넣고, 약이 아니라 열을 가해 조직을 안정화시킨다. 신 병원장은 "신경성형술이나 신경차단술은 화학적 치료법, 수핵성형술은 물리적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수핵이 너무 많이 빠져 나갔거나 섬유륜이 튀어나와 이미 넓은 부위의 신경을 누르고 있는 등 손상 부위가 디스크 밖으로까지 확대된 경우에는 수핵성형술이 불가능하다. 이럴 땐 수술이 최선의 방법이다. 신 병원장은 "환자가 젊거나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섬유륜 손상 환자의)약 80%는 수핵성형술로 해결이 가능하다. 또 경우에 따라 수술이나 다른 비수술 치료와 수핵성형술을 병행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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