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여성 A씨는 2009년 여름 조현병(옛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이 정신질환자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매일 챙겨먹어야 하는 약을 꽁꽁 숨겨두며 치료를 거부했다. 부모는 억지로 입원이라도 시켜야 하나 싶었다. 의료진은 약을 바꿔보기로 했다. 한번 주사를 맞으면 한 달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처방했고, 두 달이 지나자 A씨는 눈에 띄게 안정되면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되찾았다.
그러나 A씨는 주사제를 계속 쓸 수가 없었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험이 안 되면 약값이 10배 가까이 뛴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다시 먹는 약으로 바꾼 지 한 달도 안돼 A씨는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밤에 잠을 못 이뤄 캄캄한 집안을 걸어다니고,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져 죽으라는 환청에 이끌려 나가기 일쑤였다. 보다 못한 부모와 의료진은 보험으로 주사제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관련기관에 청원했다. 청원이 검토되는 동안 A씨의 증상은 점점 더 악화했다.
A씨가 보험으로 주사제 치료를 받지 못한 이유는 보건복지부 고시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때문이다. 이 고시는 '경구제 약물순응도가 낮아 자주 재발하거나 증상이 악화되는 환자 중 주사제 투여로 재발률을 감소시키거나 증상을 현저히 호전시킬 수 있는 경우'만 환자가 주사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해놓았다. 의료진은 A씨가 이 기준에 해당한다고 봤으나, 심사기관은 반대로 판단한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 사이에선 오래 전부터 이 기준이 너무 모호하고 주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본지 2012년 9월 24일자 '늘어나는 정신질환, 구멍뚫린 보건정책' 기획시리즈 참조). 의사가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보험을 청구해도 A씨처럼 심사 과정에서 탈락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2번 이상 재발한 환자만 보험으로 주사제를 맞을 수 있는 게 현실이었다"며 "먹는 약을 거부하는 환자에게 재발이나 만성화를 막으려고 개발된 약을 이미 재발을 거듭한 환자에게만 쓰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답답해했다.
말 많았던 이 고시가 다행히도 이달부터 변경됐다. '약물순응도가 낮아 재발로 인한 입원 경험이 있는 조현병 환자'는 모두 보험 적용을 받아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맞을 수 있게 바뀌었다. 한번이라도 증상이 재발해 입원했던 환자로 적용 범위가 좀더 넓어지고 명확해진 것이다. 의료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러나 "장기지속형 주사제에 보험 적용 기준을 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초발 환자까지 보험 혜택을 받으면 장기적으로 정신질환에 드는 보험재정이 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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