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청소년이 목숨을 버렸다. 학교폭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기사가 다시 쏟아지고 피해자의 애처러운 행적이 낱낱이 공개됐다. 무용지물이 된 폐쇄회로방송(CCTV)을 지적하고 가해자들을 비판하는 소리도 크다. 피해자도 열다섯이지만 가해자도 미숙한 또래들이다. 그들에게 책임을 던져버릴 게 아니라 어른들이 정신차릴 때이다.
왜 소년은 죽었을까. 유서에는 답이 있다. 아이는 끊임없이 미안하다고 했다. 못나서 미안하고 물건 잘 잊어먹고 덜렁거려서 미안하고 이렇게 죽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는 스스로 못났다고 여겼고 그게 미안한 것이 되어버리는 사회라서 죽었다. 사람은 다 다르다. 못난 구석도 있고 잘난 구석도 있다. 다르니까 어울려 산다. 그런데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뒤쳐지면 못났다고 자책하게 만든다.
한국 교육도 외형은 협동을 강조하고 공동체 정신을 표방한다. 함께 해답을 찾으라고 조별학습도 도입했지만 진짜 의미를 모르니까 여전히 평가는 효율 우선, 경쟁 중심이다. 조에서든 반에서든 집단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으면 점수를 떨어뜨리는 약한 고리가 미움을 산다. 이런 것이 일상이 된다. 행동이 서툴고 굼뜬 아이들이 표적이 된다. 모자라도 좋은 사회가 아니니까 약하고 저항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공적이 되고 지켜보는 또래들조차 당연시 여긴다. 공부로 멸시당하는 분풀이를 더 약한 아이한테 하는 아이들도 생겨난다.
옛날 학교에서 폭력의 가해자는 교사였다. 교사가 때리면 지켜본 아이들이 맞는 아이를 위로했다. 그런데 지금은 힘이 센 동급생이 가해자다. 아이들은 말릴 힘이 없고 더 힘이 센 교사에게 말하는 것은 고자질로 느낀다. 결국 침묵을 선택한다.
그래서 학교가 도입한 것이 CCTV이다. 이런 해법이 통할 리 없다. CCTV는 사각지대가 있다. CCTV로 해결이 된다면 그게 더 무섭다. 청소년이 감시에 길들여지는 것이니까.
해법은 없을까. 있다. 엉뚱한 핑계를 대며 하지 않을 뿐이다.
우선 CCTV를 다 없애야 한다. 학생을 교육이 아니라 감시 대상으로 삼아서는 절대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그물망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일깨워야 한다.
우선 어린이 청소년은 존귀한 존재니 폭력을 참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 존귀한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게 키워야 한다. 어른 남자도 울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청소년들에게 '그 정도는 견뎌라'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불가항력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 성기를 꺼내보이는 것과 같은 수치스런 행위를 강요받으면 저항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저항이 먹히지 않는다면 반드시 어른에게 말하게 해야 한다. 말했는데도 부모가 참으라고 해서는 안된다. 이런 것을 참는 게 '사나이다움'도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켜보는 아이들에게도 참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 약자를 괴롭히는 걸 지켜보는 것은 약자를 괴롭히는 것과 똑같다고 가르쳐야 한다. 교과서에서 유능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인류가 어떻게 평등을 쟁취했는지 약자의 권리는 왜 지켜져야 하는지 인권이 뭔지를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생 둘을 키우는 주부 엄수진(40. 서울 마포구 상암동)씨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썼다. "'이기적 유전자'로 이루어진 인간아이에게 이타적 행동을 가르치려면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하다. 매일 식탁 앞에서 행동이 느리고 자기의사표시 제대로 안 하는 친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아들들에게 늘 반복해야 하는 말들. '그래도 같이 사는 거야.'" '그래도 같이 사는 거야'를 가정에서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쇼는 멈추고 교육을 하자. 학교폭력을 예방한다는 명분의 여론조사, 형식적인 심리검사, 교사들을 쓸데없는 행위에 동원하는 것, 그만 두자. 대신 학생들끼리 몸을 부대끼고 땀 흘리고 어울려 키득대게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CCTV 설치예산은 2010년부터 매년 100억 내외가 들었다. 연극도 좋고 운동도 좋다. 평가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너무 참아서 문제가 터진 것인데 마라톤 같은 극기훈련류로 아이들을 괴롭혀서도 안 된다. 보듬고 가르쳐야 이 문제가 풀린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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