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문학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이미지는 병과 퇴폐, 죽음 같은 것들이다.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시인들을 보면, 일부러 그런 사람들만 사귄 건 아닌데 하나같이 무절제하다. 술과 담배에 절어 있고 끼니는 거르고 잠도 잘 자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죽지 못해 안달하는 것 같은 것이다. 이 짙은 자기파괴의 본능이 시인의 어떤 결정적인 자의식을 표상하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시인의 평균수명이 일반인의 평균수명과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낮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시대와 불화하는 많은 시인들은 아무도 모르게 앓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시인들을 요절 시인이라고 부르며 추모한다. 예민한 감수성은 그들의 신경을 쇠약하게 하고 무절제한 생활은 몸을 망가뜨린다. 여기에 예술가로서의 절망과 경제적 궁핍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시인들은 죽음에 저항하기를 포기한다. 우리나라의 시인 중에도 재능과 열정을 꽃피울 나이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등진 이들이 많다. 언뜻 떠오르는 이름들만 열거해도 이상과 박인환, 김관식이 그렇고 박정만, 이연주, 진이정, 기형도 등이 그렇다. 우리가 요절한 젊은 시인들을 잊지 못하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정지된 청춘과 유예된 생을 동정하고 흠모하는 무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의식 속에는 우리들의 죄를 시인들이 대속했을지도 모른다는 안도감 또한 들어 있는 듯하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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